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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16. 2024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옥류관 냉면을 먹고 싶다는 욕망

 밥보다 면을 좋아하는 내 식성은 라면을 최고의 요리로 손꼽으며 맛보다는 배고픔을 채워주는 포만감을 더 좋아했다. 라면은 언제든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면 요리는 냉면이다. 부산에 살면서 냉면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밀면도 좋아하고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냉면의 맛을 따라올 수 있는 면 요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냉면을 판매하는 곳에 가면 평양냉면은 물, 함흥냉면은 비빔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실제 북한에는 함흥냉면은 없고 함흥농마감자국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 사람들이 피난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먹었던 국수가 차가운 육수에 메밀국수를 넣어 먹는 평양냉면과 함께 냉면의 쌍두마차가 되어 비빔냉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밀면은 어찌 보면 냉면과 친척 관계의 요리이다.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냉면의 주 재료인 메밀을 쉽게 구할 수도 없도, 부산 우암동에 보급품으로 들어온 밀가루가 넘쳐나자 이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냉면이 바로 밀면이다. 이렇게 실향민에 의해 냉면이 원래의 모습과 같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밀면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무더운 여름철, 식욕을 잃은 사람들에게 특효약인 부산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온기를 대표하는 돼지국밥이 있다면 냉기를 대표하는 밀면은 부산 향토 음식의 양대 산맥이다. 부산에 왔으면 응당 밀면 한 그릇을 당연히 먹어야 할 정도로 유독 부산지역에서는 냉면보다 밀면이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탕수육을 먹을 때 부먹이냐 찍먹이냐만큼의 논쟁거리는 아니지만 나는 밀면과 냉면 중 어느 것을 먹을지 선택하라고 한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냉면을 선택한다. 특히 슴슴한 맛이 일품인 평양냉면은 나의 최애 음식으로 전국에 평양냉면 맛집은 장소에 관계없이 꼭 방문해서 평양냉면을 맛보곤 한다. 지금 가장 가고 싶은 냉면집은 평양에 있는 옥류관인데 살아생전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인이 동남아에 있는 북한 음식점에서 평양냉면을 먹었는데 슴슴한 맛이 일품이라고 했기에, 평양 옥류관에서 대동강을 바라보며 먹는 진정한 평양순면은 어떤 맛일까 늘 상상한다. 북한 음식에는 평양냉면 말고도 개성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조랭이떡국도 좋아하는데 동래역 인근 개성이 고향이신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는 조랭이 떡국을 종종 먹곤 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 꿈에서라도 그리던 개성을 못 가보시고 돌아가신 후로는 맛이 변해 발길을 끊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고향의 맛이 있다. 유명 연예인이 선전하던 광고처럼 잊을 수 있는 맛이자, 자꾸 생각나는 맛은 몸이 아파 누워있는 사람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천연 자양강장제이다. 진정한 평양냉면을 맛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구에 가는 나의 둔한 미각을 충족시켜 주는 아무 맛도 없는 슴슴한 맛은 어쩌면 지친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천상의 맛이 아닐까 한다.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꿈에 그리는 고향에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이 평양냉면, 조랭이떡국, 아바이순대 등 북한 음식을 먹으며 고향의 맛을 느끼고, 고향의 기운을 받아 죽기 전에 꼭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은 꿈을 꾸게 한다.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이 통일 한국에서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을 꿈꿀 수 있도록 한민족 모두에게 가장 적합한 통일의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음식은 먹을 때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데, 나에게는 양념치킨이 그러하다. 아내의 외할머니께서 첫 손주 사위라고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소중히 모으신 쌈짓돈을 꺼내 양념치킨 두 마리를 사주시곤 했다. 하나면 충분하다고 극구 말리던 아내의 말은 개의치 않으시고 배부르게 먹으라며 내 몫으로 양념치킨 두 마리를 시켜셨다.


 꼭 할머니 댁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양념치킨을 먹을 때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내게 손주 사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할머니가 생각났고, 본격적인 채식을 하기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양념치킨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만 편하게 양념치킨을 먹으며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음식이 정체성이자,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문화가 축척된 진액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문화 이상의 것이 담겨 있는 그 지역의 자부심이자 모든 것이다. 그 음식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 서로의 정을 나눌 수 있고,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식구라는 한자처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정을 나누고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평양랭면멀리서왔다고하면안되갔구나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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