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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18. 2024

국밥, 소울 푸드

국밥 속에 녹아 있는 것들

 나는 요리를 잘하지도 않고 손맛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 된장찌개, 김치찌개, 볶음밥 정도는 결혼 전부터 종종 직접 만들어 먹곤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간편하게 먹기 위해 라면을 즐겨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라면을 먹어 봤을 정도로 라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거의 없는 편이다. 대신 내 몸에 대해 역설적인 양심적 행동하기 위해 국물은 먹지 않고 면만 먹는다. 하지만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면 항상 라면이 생각나는 것은 편리함보다는 라면 국물의 온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정이 아닐까 한다.


 국물 요리의 진수는 국인데 한식에는 미역국, 소고기뭇국, 된장국 등 다양한 국물 요리가 있는데 외국인들이 한식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다양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영토가 넓은 나라가 아니지만 지역 별로 그 땅의 토산물(土産物)을 이용해 대대로 음식을 만들어 왔고, 그 땅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 정밀하게 기록됐다. 이는 해외 거주를 하거나 장기간 해외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 김치가 생각나게 하는 마법을 일으킨다.


 물론 외국에서 그 나라만의 음식이 있지만 나라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음식은 당연히 한식이다. 늘 자연스럽게 한식을 먹어왔고 지금도 한식을 즐기기에 단 한 번도 한식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특히 어머니의 정이 그리울 때면 어릴 적부터 즐겨 먹었던 미역국이 미치도록 먹고 싶은 이유도 음식 속에 살아 숨 쉬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뜨끈한 미역국 한 그릇만 먹어도 하루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도 미역국 속에 녹아 있는 어머니의 포근함 때문일 것이다.


 식기는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인데 한식이 차려진 식탁에는 의례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여 있다.  한 유대인 학자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지배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은 한국, 일본, 중국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젓가락의 길이도 다르고 쥐는 방법도 다르며 가장 큰 차이는 젓가락의 재질이다. 특히 한국은 금속으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해서 일본인이나 중국인도 사용하기 쉽지 않다. 한 재벌가 총수도 태어나기를 해외에서 태어난 손주가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하자 혼쭐을 내었다는 이야기도 젓가락질이 한국인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숟가락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이지만 한국의 숟가락은 한국만의 특색이 있다. 한국의 숟가락은 주로 밥이나 국을 떠먹을 때 사용되기에 문자 그대로 딱 한 술 뜨기 좋은 깊이가 포인트다. 숟가락 자체가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한국인만의 딱 좋은 양을 담을 수 있는 도구이다. 실제로 한술, 두 술 등 숟가락으로 떠 분량을 세는 단위도 아직 사용하고 있다.


 이 숟가락이 없으면 국을 먹기 정말 불편한데 한국의 식사 예절 상 그릇째 마시는 것은 결례이기에 숟가락의 사용과 발달은 한식 역사에 있어 필요 불가결이다. 국을 발달 과정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숟가락의 필요와 의미로 한국인의 식탁 위에 늘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국을 만드는 재료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주로 이용했고 그래야지만 매일 밥상에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물망(모자반의 제주 방언)을 이용해 만든 몸국부터 서울의 소고기를 넣어 만든 설렁탕까지 각 지역별로 다양한 국 요리가 존재하며 전라도 해안 지역은 건어를 이용한 간국, 부산의 대표 음식인 돼지국밥, 대구의 따로국밥 등이 잘 알려지고 한국인이 사랑하는 국이다. 한국의 주식이 쌀이기 때문에 쌀농사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를 이용한 국 요리는 정말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는데 설렁탕의 유래 중 하나인 선농단에서 소를 제사로 바친 후 만들어 먹은 선농탕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처럼 지금도 설렁탕은 서울 경기 사람들에게 귀한 요리로 인식되는 것 같다.


 이에 비해 대구의 따로국밥이나 부산의 돼지국밥은 서민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국이다. 단지 국에 섞어 나오는지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느냐의 차이만 존재하는데 개인의 취향도 반영되었지만 밥을 섞느냐 섞지 않느냐에 따라 음식 본연의 맛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산의 돼지국밥은 따로 먹기보다는 밥알에 국물의 진기가 녹아들 수 있게 국에 말아먹는 것이 진미라고 여긴다.


 “짜장면은 당구장, 국밥은 유치장에서 먹는 것에 제일 맛있다”라는 우스갯소리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장소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무리 맛있는 돼지국밥도 집에서 배달시켜 먹으면 사람 가득한 돼지국밥집에서 먹을 때와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국밥의 기원이 그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을 먹을 때부터 한 솟 가득 끓여 모두 나눠 먹으며 한 가족임을 느끼고 결속력을 다졌던 음식의 DNA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함께 먹어야 더 맛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와 문화, 지역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결합된 존재이다. 같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가 같은 연합이라는 것을 증명했고,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수확한 재료를 넣어 땅의 기운이 음식 속에 담길 수 있도록 했으며, 단백질 공급원인 육고기를 넣어 영양학적 결핍이 없도록 했던 노력이 모두 국이란 음식 안에 담겨 있다.


 그래서 음식 투정을 하는 것은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과 음식의 재료를 키운 사람의 노고, 음식 속에 녹아있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오늘의 일용한 양식이 주어짐을 감사히 여기며, 만족하는 자세로 음식을 먹는 것도 음식을 대하는 중요한 삶의 태도가 될 것이다.


#국밥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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