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글쓰기의 동행
나는 종종 ‘뼛속까지 이공계’라는 표현을 하는데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본능에 가까운 이과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직업은 이공계가 아니기 때문에 일상에서 이과적 사고를 하는 일은 드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이과적 사고를 통해 결정을 한다.
이런 이과적 사고가 내 MBTI에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사실 공간지각력과 정확한 측정을 요구하는 태도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물리시간(물론 수학 시간에도 배웠다)에 벡터에 대해 배우면서 눈앞에 펼쳐진 공간의 개념에 놀라워하며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는 것 자체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2000년대 초반 3T 열풍 속에 BT(Bio technology)의 한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한 나에게 대학원 진학과 의전대 진학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두 개의 큰길이 아닌 전공과 무관한 취업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나와 가족의 밥벌이이자 성장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투자금을 제공하는 돈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당시 대학원과 의전대를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학은 시간을 투자해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학문이다. 운 좋게 일이 년 안에 결과물을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실험 과제가 대부분이다. 한 교수님은 학부시절부터 연구과제를 선정해서 석, 박사 과정까지 한 분야에 대해서만 연구하신 분이 계실 정도로 과학에서 시간은 필수적인 투자물이다.
대학교 재학 시절 벼에 대해 연구하던 선배님이 계셨는데 병충해에 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볍씨가 3년 동안 발아를 하지 않아 발아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하고 또 실험하기를 반복해서 결국 가설로 세웠던 것을 증명해난 것을 보기도 하였다. 과학의 연구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실패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물론 페니실린의 발견과 벤젠의 육각 고리의 발견처럼 우연한 과정에 의해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이룩한 사례도 있지만 과학은 작은 시료에도 영향을 받고 나노(nano/10-9) 사이즈의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체계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실험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행동이기에 시간을 절약하고 가장 근접한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전시적 시점에서 실험의 전반적인 과정을 관할하며 각 단계에 어떤 작업을 진행할 것인지를 계획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글루틴에서 함께 글쓰기를 하는 작가님의 글 중에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것이 있는데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축약어를 쓴다는 말이 과학 분야에서처럼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 과정에서도 석박사 과정의 선배님들이 지도를 받을 때면 전문용어와 축약어를 이해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전공자인 나도 힘들었는데 비전공자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과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를 흔들 정도로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과학이라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학문을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보다 과학을 잘 이해하는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분야를 쉽고 편하게 글쓰기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학부 과정만 전공했던 나도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한 문장 쓰기도 힘들었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을 과학에만 몰두했던 과학자들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중흥을 위해서는 과학자의 글쓰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자의 글쓰기는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여 과학이 과학으로 그치지 않고 대중에게 일반적인 내용으로 전달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과학적 연구 성과를 도출하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를 과학자의 글쓰기는 연구보다 더 가치 있고 필요한 것이다. 과학자들만 공유하는 논문이 아닌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일반인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과학자의 책 한 권이 더 필요한 요즘, 과학이 미래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기술이자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과학적 접근을 도와주는 매뉴얼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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