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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r 01. 2024

소고기의 과학적 인문학

아낌없이 주는 소

대학교 여름 방학의 자유로운 시간을 이용해 제3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 갔을 때 한가로이 풀밭에서 풀을 먹고 있는 소를 보면서 도축이 되지 않는다면 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소는 분류학적으로 유제류인데 발굽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발굽은 소의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말의 발굽과는 다른 역할을 한다. 말은 편자를 해야 하지만 소는 굳이 편자를 할 필요는 없다.


 발굽의 개수에 따라 짝수의 경우는 우제류, 홀수인 경우는 기제류로 분류되며 흥미롭게도 유제류인 소, 돼지, 염소만 구제역에 걸린다. 가끔 뉴스에 ‘구제역’에 관련된 소식을 보면 보통 소목장의 영상이 나오는데 구제역(FMD/Foot & Mouth Disease)은 소의 입과 발굽에 수포나 궤양이 생기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이는 수포가 생기는 위치나 특징을 보면 사람의 수족구병과 비슷하다. 발생학적으로 보면 인간이나 소나 비슷한 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소는 농경사회의 중심이자 노동력의 한 축으로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자, 한때 부를 상징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집에 소유한 소가 몇 두냐에 따라 부의 등급이 달라졌으니 농경 중심의 사회에서는 소가 가장 큰 재산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이런 대접을 받던 소이다 보니 함부로 도축할 수 없었기에 소고기를 먹는 날은 일 년 중 며칠 되지 않을 정도로 귀했다.


 설렁탕의 가장 강력한 유래로 추정되고 있는 선농단의 제사 후 먹는 음식 선농탕도 귀한 소고기를 많은 인원이 함께 먹기 위해 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추정해 보더라도 소고기는 조선시대 왕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고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다 보니 소고기를 도축한 후 최대한 많은 것을 먹거나 요리에 사용해야 했기에 한국만의 소고기 분할법이 생겼다.


 흔히 외국에서는 내장이나 꼬리 등은 요리로 사용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대창, 곱창 요리도 발달해 있고 꼬리뼈를 이용해 꼬리곰탕을 만드는 등 소의 다양한 부위를 활용한 음식이 많다. 고기의 경우에는 10개의 대분할로 나눠서 큼직하게 분할하는 북미식 8개의 부위보다는 보다 세밀하게 고기의 부위를 나눈다. 대분할 10개 부위에서 총 39개 부위로 나눠 목심, 등심, 안심,  살치살, 채끝살 등 다양하다.


 이렇게 소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소가 도살장으로 끌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높은 담벼락으로 쌓인 출구가 없는 외길을 걸어가다 문이 열린 순간, 무엇을 봤는지 겁에 질려 뒷걸음치는 소를 보면서 공포에 떠는 소가 순순히 다시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서 소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소의 운명이 고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므로 소고기의 수요가 줄면 자연스럽게 공급도 줄 수 있다고 믿기에 3년 전부터 육식을 하지 않는다. 회식 때 내가 고기를 굽고 사람들의 고기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 내가 나서서 고기 먹는 것은 추천하지는 않는다. 물론 고기 섭취를 통한 영양학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지금은 과잉의 시대이다. 또한 고기를 먹지 않아도 단백질을 섭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음식을 선택함에 있어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보다 건강한 지구로 만들기 위해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육식을 위해 지금도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소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체육과 소, 돼지와 같은 가축 이외의 개체에서 단백질을 공급이 각광받고 있는 요즘, 인간의 미각과 단백질 공급을 충족시켜 주었던 소고기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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