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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r 04. 2024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복종하며 지배하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과거에는 신분제가 존재하는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권력이나 재산을 가진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을 지배했으며, 권력과 재산은 그 지배의 명분과 타당성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도 1894년 갑오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반상의 구분이 존재하는 신분제 사회였고,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면천되는 일은 없을 정도로 사회를 유지하는 최적의 시스템이었다.


 서양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부르며 상인 계층을 가장 천하게 생각하던 관념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실물 경제와 생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상인 계층을 철저히 무시했다. 상거래로 많은 재화를 벌어봤자, 상인이었으며 오히려 그릇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상인 계층은 신분제라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행상의 일종인 보부상의 경우만 보더라도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 물자와 식량을 공급하는데 일조했고, 병자호란 때도 비슷한 공헌을 하여 전후 전매권을 얻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그들이 받아온 무시와 설움을 뛰어넘는 사회적 공헌을 했다. 평상시에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곳과의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며 생활 문화 발저에도 큰 기여를 했다.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북해 무역의 맹주,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을 결성하여 도시 간 무역에 있어 큰 역학을 했고, 이는 도시 국가가 번성하던 시절에는 도시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국제 정세와 외교 등과 같은 대소사에 큰 입김을 주었다. 국가 간의 외교와 협력 등에서는 귀족 계층이 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인 계층의 말 한마디가 더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포르투갈어의 ‘순수하다’라는 의미에서 나온 카스트는 사회 집단들의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자기 이익에 충실한 조직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상 체계와 생활양식의 총화로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근대 이전 농경사회의 네 가지 대표적인 카스트였던 현인/사제, 지배자/전사, 상인과 소작농 중 그 역할과 구성에 있어 가장 변함없이 존재하는 카스트이기도 하다.


 이렇게 카스트가 융성하고 몰락하는 이유는 시대 변화에 따른 당위성 때문으로 경제, 사회적 구조와 사상적 변화를 살펴봐야 하는데 특정 카스트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고 당대의 지배적 사상을 동원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모여 살던 도시가 점점 도사화, 상업화되면서 빠른 이동으로 인한 교역의 증가는 단순히 재화의 이동이 아닌 사상과 문화의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었던 전쟁과 같은 사건 속에서 상인은 전쟁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이 제공하는 전쟁 물자와 군수품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과 다름없었다. 전쟁의 전초지가 아닌 곳에서는 전쟁의 특수가 일어나며 상공업의 발달이 일어났고, 전후 사회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 가는 토대를 마련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서 냉전시대와 탈냉전의 시대, 제3지대의 도약에 이르기까지 인류 발달의 크고 작은 부분에서 상인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치 복종하며 지배하는 것과 같은 상인의 모습을 보면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모든 일을 계획하고 조종하는 실세의 전향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역사상 상인 계층이 전면에 나서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축은 상인 계층이 주도했으며, 그들의 작은 행동과 말에서 비롯된 변화는 기존 가치관의 전도를 일으키며 인류의 진일보를 이끌었다. 앞으로도 상인이 만들어갈 미래 사회의 변화는 아직 오직 그들의 행보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들의 행보를 주목하며 다가올 미래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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