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Mar 13. 2024

유럽도시기행 1

낯선 도시를 방문한 이방인에게 필요한 것

태생이 집돌이인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 우리나라 인근의 나라만 다녀올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집이라는 안식처에서 가만히 앉아 쉬는 것을 최고의 휴식이라 생각했던 내가 결혼을 하면서 인식의 균열을 넘어 붕괴를 느꼈다. 세상은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가장 보편적인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서 더 넓은 곳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뉴질랜드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유럽, 동남아시아 등 가보지 않았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그곳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좋아하는 곳은 더욱 자세히 알기 위해 별도로 공부하는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여행을 가면 그곳의 민속 박물관을 꼭 가보는데 가볍게 박물관을 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체험의 장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존재이기에 같은 생활양식을 가졌어도 환경이 다르면 그 생활양식도 반드시 변화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변화의 원인을 파악할 때 환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먼저 알아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된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았던 동굴이나 움집을 벗어나 가족이 아닌 타인과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부락과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런 마을이 모며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황무지에 불과했던 곳도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팽창으로 도시의 중심이 되거나 번화가가 되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사람들 모을 수 있는 콜로세오, 신전과 건물을 지으면서 도시의 성격이 부각되었고 이 건축물은 도시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무너져 버린 아테네의 신전과 로마의 콜로세오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것처럼 건축물 그 자체가 도시가 되는 경향도 적지 않다.


 하지만 건축물은 건축물이기에 도시의 모든 것을 담을 수도 없고, 도시를 대변할 수도 없다. 도시의 일부인 건축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도시의 올바른 의미를 저해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시 도시를 설계한 사람의 의도가 온전히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도시는 도시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건축물은 도시의 부속물로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도시 전체를 의미하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 단 한 번도 도시에게 의미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고 그저 유명하다는 곳만 갔던 관광객이었다. <유럽도시기행 1>에서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라는 말처럼 이제 나는 도시의 콘텍스트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제 스테르담 작가님의 암스테르담 마실에 대한 글을 읽으며 마치 암스테르담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처럼 도시의 세밀한 부분까지 알고 그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주거하는 원주민의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콘텍스트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도시도 친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 것이라 믿는다.


#몹글

#글쓰기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읽기를 넘어 같이 읽기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