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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r 14. 2024

나무 문답

나무로부터 시작되는 숲의 인문학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그 끝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죽으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에 시골집에 갈 때마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할아버지께서 집 뒤에 심어 놓으셨다는 오동나무를 보며 죽으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날 때 오동나무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골집에 가는 일이 없어 그 오동나무의 행방을 모르지만 지금도 죽으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변함없이 한다. 오늘 회사 후배 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장례식장 한 곳에 40대 초반의 빈소를 보면서 나도 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 개선장군의 행진 가운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외쳤던 사람들의  속삭임이 내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인간보다 오래 삶을 영위하는 나무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의미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무에도 끝이 있다. 물론 자연의 순환에 따라 다시 부활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분명 나무의 생에도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나무는 철저하게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에 인간의 삶과 달리 예상하지 못한 일은 잘 생기지는 않지만 나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존재도 드물다.


 나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이다. 나무를 통해 서식지를 만드는 조류나 설치류만 보아도 나무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생물들이 있다. 특히 나무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끼류도 나무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때때로 나무가 주는 열매로 자연에서 약육강식의 법칙과 맞서 싸우며 살아가는 생물들도 있다.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주변의 대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미리 투자하는 투자의 귀재이다. 새와 작은 동물들에 의해 자신의 후손이 멀리 퍼져나가 그 세를 넓힐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기부를 하는 것이다. 자신을 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100년의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어느새 숲은 나무의 후손들로 가득하게 된다.


 내가 나무를 동경하는 이유도 나무는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는 점에 있다. 이론적으로도 나무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나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주변에 사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양분으로 내어주고 후손의 몸에서 부활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나무는 영원히 사는 존재일 수도 있기에 나무를 더욱 동경할 수밖에 없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참나무라고 알고 있었던 과거의 무지에서 벗어나, 양반들의 꽃으로 알려진 능소화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며 나무에 대한 동경이 나무를 바르게 이해하고 아는 것에 시작됨을 느낀다. 나무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나무를 동경하고 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 나무에 대해 올바르게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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