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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r 15. 2024

긴긴밤

서로의 존재와 숨결을 나누는 시간

얼마 전 내 친구에 대한 내용을 쓴 글을 보고 지인 중 한 명이 진짜 친구가 3명이냐고 물어보았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란 뜻을 가진 ‘친구’라는 단어의 정의대로 해석한다면 친구가 3명인 것은 맞다.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서로의 연락처도 모르고 안부를 알지 못하게 된 친구들도 있지만  지금 내가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친구는 3명뿐이다.


 혈기왕성한 스무 살의  모습부터 보아왔던 그들은 나의 결점과 못난 행동, 나의 치부까지 다 알고 있는 존재이기에 나의 지금과 과거를 공유하는 소중한 대상이다. 물론 나도 그들의 지금과 과거를 알고 있기에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지난날의 일들은 안주 삼아 함께 웃고 울고는 한다. 철부지 시절 어리석은 행동마저 나눌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기에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닌 또다시 이야기하고 싶은 과거이다.


 친구는 아니지만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누나가 있는데 지금 직장인 겸 그림책방 주인, 작가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우연히 알게 된 누나의 그림책방은 한동안 나의 카렌시아가 되어 일상 속 스트레스에 지친 내가 회복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때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자주 그림책을 보고 있다. 특히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그림책은 교육의 의미를 넘어 유희를 나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책 중에 <The MAP>을 정말 좋아하는데 지도를 그림으로 해석한 지리, 생태 등 여러 분야 지식의 총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명작이다. 3권의 시리즈를 소장하며 틈나는 대로 보는 나의 애장품이자 아이가 수시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엿보고 있는 그림책이다. <The MAP>을 통해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라는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다. 심지어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찾아서 볼 정도로 그림책은 동심을 느끼고 새로운 해석을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글자로 표현하기 힘든 것도 그림으로 표현하면 독자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는 것처럼 그림책은 단순하고 간결하게 자신의 의미를 보여준다. <긴긴밤>에서처럼 남반구 극지방에 사는 펭귄과 뜨거운 아프리카 초원지대에 사는 코뿔소가 서로 만나 우정을 나누는 배경은 그림책으로 만든 상상의 세계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림책만이 표현할 수 있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림책은 상상의 세계만을 표현하는 것만은 아니다. 글자로 전달하기 어려운 것을 그림에 모두 녹여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최고의 표현 기법으로 글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독자에게는 아주 좋은 유희가 될 것이다.  


 어쩌면 북쪽을 의미할 수도 있는 코뿔소 노던과 남반구를 대표하는 동물 펭귄이 생존의 위험을 극복하며 바다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 피어나는 종을 초월한 우정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서로의 존재를 지켜주기 위한 책임감을 볼 수 있다. 특히 존재에 대한 의미는 이름이 없는 무명(no name)이라 할지라도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은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한다.


 야행성인 동물도 있지만 포식자의 위협을 피해 잠을 자야 하는 코뿔소와 펭귄의 긴긴밤은 만약 혼자 있었다면 죽음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든은 알에서 부화하는 순간부터 지켜온 펭귄과 함께한 긴긴밤을 통해 오히려 상대를 지켜줬다는 책임감보다는 자신의 쓸모를 확인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와 눈물을 나누는 협력으로 존재의 의미를 빛나게 하는 관계로 만드는 축복이 내게도 허락되기를 원한다. 물론 스쳐 지나가는 관계도 있겠지만 나에게 허락된 관계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빛나에 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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