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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r 26. 2024

나의 누수 일지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2년 전 레이아웃 관련 업무를 하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점이 의뢰가 들어온 물건에 누수와 같은 하자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감쪽같이 위장해 놓아도 누수는 반드시 흔적을 남기기에 매의 눈으로 누수의 흔적을 찾았고, 특히 텍스에 의심의 흔적이 보이면 텍스까지 열어 어두운 천장을 향해 플래시까지 비추며 누수의 흔적을 찾아내는 열정을 보였다.


 건물도 사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과 하자가 생긴다. 요즘 신축 아파트도 하자 보수 기간이 10년인 것처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도 예상치 못하는 하자가 있을 수 있기에 완벽함을 자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공사를 진행하기 전 누수의 흔적을 찾았던 이유가 누수가 발생하는 순간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기 때문이라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자기 방어로 내가 누수의 흔적을 찾아내 임대인이나 세입자에게 “누수가 원래부터 있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누수는 내 책임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건물의 하자가 발생한 경우 임대인에게 하자 보수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설령 내가 누수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내 책임이 아닌데 나는 설레발치며 내 책임이 아님을 규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정말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 열정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사용했다면 더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쓸데없는 경험도 어디를 가도 천장이나 건물 외벽을 보며 누수의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는 습관은 의도치 않게 주변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상업시설의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에서 누수도 심각한 문제를 만들지만 주거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에서의 누수는 정말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가 그러하다. 우리 집 천장에 누수가 생긴 적도 있었고, 우리 집 때문에 아랫집 천장에 누수가 생긴 적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 ’ 상호 간 원만한 협의를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 ‘라는 암묵적인 조약이 있다.


 우리 집 때문에 아랫집에 누수가 생겼을 경우는 나는 죄인이 되어 아랫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잠잔 코 들을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은 아니지만 마치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 양 나에게 책임을 추구하는 말을 거부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세입자라면 집주인과 이야기하라고 책임을 돌릴 수 있지만, 특히 내가 집주인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원만히’라는 말처럼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표현을 없을 것이다. 몇 번의 누수 경험 중 문자 그대로 원만하게 웃으며 해결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서로에게 책임을 물으며 누구 탓이다를 반복하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제야 합의점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누수라는 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추후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일이라 단 한 번에 처리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런 공방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상대를 비난하는 행동을 선택할 수도, 상대를 설득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선택은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아파트처럼 내가 사는 공간이 윗집과 아랫집에 맞닿아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혹여 마주칠 수도 있는 사이이기에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누수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쟁의 순간 내가 내린 선택이 지금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 보여도, 훗날 내에게 이득인 경우도 많다. 지금 당장 나를 불편하게 하는 선택일지라도 내 마음이 편하다면 그 선택을 결국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층간 소음 때문에 주택으로 이사와 마음 편히 살고 있지만, 늘 아파트에 살 때는 누수보다 층간 소음에 마음 졸이며 아이에게 매 순간 뛰지 말라는 경고를 하며 살았다.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려는 선택이 나에게 편안함과 자유를 주었듯이 이제부터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이 불편함이 아닌 편함과 자유를 줄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승자이다”라는 말처럼 결국 나를 웃게 만드는 선택을 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 현명한 선택이 만들어주는 결과물이다.


나의 누수 일지 / 김신회 / 여름사람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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