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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r 31. 2024

아무튼 메모

메모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

 나는 메모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름 부모님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기억력과 암기력이 좋기는 하지는 매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하기에, 잊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매년 11월이 되면 미리 다음 해 다이어리나 수첩을 찾아 어떤 모델을 사용할지 고민한다. 나름 여러 종류의 다이어리와 수첩을 사용해 보았지만 결국 나에게 맞고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5년 전부터는 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단 하나의 제품을 사용한다. 바로 몰스킨의 데일리 다이어리 하드커버 모델인데 주모니에 들어갈 정도로 사이즈가 작아 휴대하기 간편해서 어디든 들고 다니며 메모가 필요한 순간 작성하기 좋다. 아무리 효율성이 좋은 다이어리라 할지라도 늘 휴대하지 못하고, 메모하는 순간 내 곁에 없다면 메모의 도구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몰스킨 다이어리를 사용하기 전까지 3P 바인더를 주로 사용했지만 늘 이런 휴대성의 한계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올해는 문지애 님이 만드신 다이어리를 더 많이 사용하지만 몰스킨 다이어리는 나의 메인 메모장이다. 그날의 기분, 오늘 한 일, 앞으로 해야 할 일 등 온갖 것들이 적힌 내 다이어리는 복잡한 내 마음을 투영하듯이 빽빽하게 적힌 날도 있지만, 아무것도 적히지 않는 여백으로 넘쳐나는 날도 있다.


 스스로 메모를 좋아하고 잘한다 믿고 있던 시절,  기록하는 행위에 집중했을 때는 무조건 매일 적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요즘은 일부러 아무것도 적지 않을 때도 있다. “망각 또한 신의 축복이다”라는 말처럼 나에게도 잊고 싶은 날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적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이후로 나도 모르게 메모를 하지 않는 날도 생겼지만 나는 메모하며 과거를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모의 참된 가치는 앞으로 일어난 일을 대비하며 그것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자세에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나간 과거는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과거의 사실을 바꿀 수 없고 바꿔지지 않는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일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기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나의 노력으로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과 오늘로 인해 바뀔 내일에 집중해야 함을 느낀다.


 기록하는 순간 나의 의지는 반영되었고, 내 행동의 목표는 결정되었다. 하지만 기록했다고 마음 편히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록한 메모를 매일 보며 마음에 새겨야 한다. 매일 기록한 것을 보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집중하는 행위이며, 이런 집중의 결과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기록하고 매일 그것을 읽으며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이 축척되면 내 몸과 마음은 기억하고 반응한다.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자극-반응-보상의 단계를 거치면 어렵지만 몸은 이런 자극에 대한 수용을 하며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얄팍한 포상에 속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준비 과정이다. 특히 메모하는 습관처럼 체득화하기 어려운 행위일수록 보상의 가치는 중요하다.


 그 보상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즉 미래의 나를 꿈꾸게 하는 것이다. 내 꿈으로 가득한 메모장은 존 고다드의 <종이 위의 꿈>처럼 나만의 버킷리스트가 되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 줄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이든 내가 간절히 원한다면 기록하고 기억하여 매일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정말 원한다면 그것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몰입이 있어야 하며, 그 몰입의 문을 여는 것이 바로 메모이다.




아무튼 메모 / 정혜윤 / 위고 / 2020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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