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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pr 14. 2024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는 오늘

얼마 전 끝난 총선의 화두는 “공정하지 못함에 대한 분노”였다. 열심히 일해도 변하는 것이 없는 세상을 향한 ‘X 같은 세상’이란 소시민들의 분노와 허공을 울리는 외침이 모여 그동안 기득권층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을 일정 부분 깨트렸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큰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지만 정치인의 선심성 발언과 지킬 수 없는 공약의 남발에 더 이상 속지 않는 유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최선의 의사 결정법은 아니지만 국민 투표를 통해 당선된 위정자들이 국민들이 처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함께 보다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여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면 정당의 색깔로 정치 성향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의해 선택받고, 임기 기간 동안 의정 활동의 결과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이 많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살펴보아도 30여 년간의 일제 강점기 속에서 혼란한 시기를 보냈고, 광복 이후 찾아온 미 군정에 의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아도 이때 권력가들은 민주주의의 ‘민’ 자라도 알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권력욕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 선거를 하고, 독재 정치와 유신 체제에 대한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통해 우리나라만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만들어지고, 유혈 사태를 겪었지만 결국 민주주의는 승리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독재자의 권력은 결국 끝을 맞이했고, 신처럼 추앙받던 절대자도 죽음 앞에서는 국민들과 똑같았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가 만든 모든 역사 속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불편의 사실이다.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특별할 수 없고,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자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고,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것으로 영생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죽음의 순간을 거부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내일 일은 모르지만 오늘 일은 내가 선택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인 내일의 결과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보다 건강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건강한 음식을 조금만 먹고,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한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수명이 더 늘어나고 아프지 않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의 영역도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배운 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융합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기에 오늘의 배움에 충실해야만 한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물론 예측할 수 있겠지만 그 예측이 정확하다는 것은 내일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오늘의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위한 투쟁이자 끝이 좋은 Beautiful landing이 될 수 있도록 선택을 해야 한다.


 세계를 정복한 정복자도,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도, 큰 부를 이룬 백만장자도 죽음 앞에서는 공평하기에 오늘 내가 내린 선택과 그 선택을 행하는 행동으로 내 인생과 내일의 죽음이 평가받을 것이다. 내일의 죽음이 허무하지 않도록 오늘의 찬란한 태양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삶의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단 한 번만 사는 인생임을 안다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 한스 할터 /포레스트북스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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