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다.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이과생의 허튼짓이라고 할 만큼 국영수보다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아니었으면 역사를 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한동안 경주에 가는 것을 매우 기피했다. 경주는 무려 1,000년의 시간 동안 한 나라의 도읍이었던 곳으로 속된 말로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경주 전체가 역사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황룡사지 터를 보며 30m 높이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상상하고 불국사 앞에 서서 배를 타고 불국의 세계로 들어가던 신라시대를 꿈꾸는 것이 힘들어서 웬만하면 경주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 아내는 경주에 와서 예민한 나를 자극해서 분위기기 냉랭해지는 피해 아닌 피해를 입기도 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전하며, 그것을 기록한 사람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음과 동시에 후세의 사람에게 그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한 사람과 지금의 여러 사람과의 만남의 현장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삼전도의 치욕이 서려있는 남한산성에서 다시는 이 땅에 외세의 침략이 없도록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과 제주의 대몽항쟁탑을 보며 거대한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격이라 할지라도, 뽑힐지언정 스스로 부러지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나라와 민족을 지킨 정신은 그 땅을 밟고 서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물론 승자의 기록이란 오명도 있지만, 종이와 글이 귀했던 시절의 흔적은 남아있는 것 자체로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이라는 표현하는 우리의 역사를 보면 평화의 시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외침 속에 빼앗기고 고통받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을 유산으로 남긴 기록의 후예답게 조선시대 그 이전에도 고려사, 삼국사기 등 고대와 중세 시대에도 문서, 비석 등 기록을 남겨 놓았음에도 외침은 왜 계속된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대상은 어린아이와 여자들이다.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후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들을 모시던 사람들 그리고 공녀까지 청나라로 잡혀갔다. 청나라의 감시와 핍박을 피해 겨우겨우 고국으로 돌아온 여자들에게 조선의 성리학은 ‘화냥년’이란 칭호를 주었다. 단지 내 고향에서 살기 원해 목숨 걸고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손가락질하고 멸시했다. 사대의 명분을 지키지 못하고 오랑캐라고 부르는 청나라에 왕이 머리를 숙인 지배층의 책임은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가되었고 백성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것이다. 지배층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록에 남겨도 역사는 반복되었고 외침 속에 백성들의 피해만 가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피 속에 어려울 때일수록 똘똘 뭉쳐 국난을 극복하는 힘은 의병운동으로 독립운동으로 나타나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숨은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다. 역사적 사료가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과거의 선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면 현재의 어려움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처럼, 역사의 해결책도 반복될 수 있기에 역사를 과거의 한순간이라 보지 말고 현재를 살아갈 선조의 울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