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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pr 26. 2024

필연적 편협

다양성을 위한 조감도의 시선과 자유로운 생각

어제 회사 행사가 있었는데 나와 15년 이상 나이 차이 나는 후배들과 같이 행사 준비를 하면서 회의도 하고, MZ 세대의 취향과 생각을 직접 체험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경품을 선택하는 것은 모두 후배들에게 일임했다. 이미 나는 오랜 기간 사용해 온 ‘11번가’라는 커머스 앱을 삭제했고, 요즘 인기 있는 쿠팡은 회원 가입조차 안 되어 있기도 했지만, 나는 쇼핑에 있어서 지극히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인생 자체가 ‘모 아니면 도’인 스타일인데 만약 경품을 내가 선택하게 된다면, 내 취향에 맞는 것만 선택해서 받는 사람들이 경품 수령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소비의 큰 트렌드로 자리 잡아온 ‘가성비’가 좋은 상품을 넘어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 할지라도 만족을 주는 ’ 가심비‘ 트렌드가 더 크게 유행하고 있기에 후배들의 트렌드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후배들한테 경품을 구매하는 일에 전권을 주자, 조금 당황하는 모습이 보여서 “나는 늘 입던 옷, 신는 신발 브랜드만 산다”라고 말하며 MZ 세대의 취향에 맞도록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 쪼는 맛‘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으로 경품 추첨을 하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행사에 참여했다면 최소한 작은 경품이라도 모두 받아 갈 수 있도록 했다.


 공짜로 무엇을 받으면 항상 기분이 좋지만, 설령 나처럼 집에 이미 여러 개 있는 보조배터리를 경품을 선물 받았어도 기분이 좋았다. 역시 행사의 꽃은 경품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느꼈다. 물론 참여하면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경품도 있었지만,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만 받는 경품은 50만 원을 넘는 것도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며 항의를 듣기도 했지만, 경품 선택은 후배들이 정말 잘했다고 느꼈다.


 아마 내가 선택했으면 자전거나 케틀벨과 같은 운동기구 등 내가 좋아하고 갖고 싶은 것들을 준비했을 것이기에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점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점점 나는 내가 만든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며, 심지어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벗어나려는 용기조차 없는데, 나는 이미 내가 만든 세계에서 최적화되어 있기에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쉽지 않다.


  내가 만든 세계는 나만을 위한 세계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내가 듣기 좋은 말을 우선적으로 듣게 된다. 내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이미 나는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내 몸은 본능적으로 나의 의지를 거부한다. 이런 내 본능이 삶의 매너리즘을 가져왔고, 만약 더 심해졌다면 우울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운 좋게 우울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나는 내 세계에 대해 엄청난 불만이 있었고 작은 용기를 내어 내가 만든 세계를 스스로 파괴하였다.


 나를 작은 우물 속에서 나오게 만든 용기는 바로 ‘글쓰기’이다. 만약 내가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새벽 2, 3시까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를 보며 잠을 못 이루고 그다음 날 피곤에 절어 출근하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불만을 표출하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밀린 잠을 몰아서 자며 쉬는 날은 잠만 자는 남편,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 매정한 아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글을 쓰니 한쪽에만 치우친 사고나 선택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된다. 전체적인 것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서,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 어떻게 해서 이 문장이 나왔을까를 생각하면 절대 편협한 사고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도 이미 정답이 없는 나만의 답을 찾는 것이라서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고 상황과 문맥에 맞는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물론 내 생각과 내가 찾은 정보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각과 관점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비난하는 편협한 사고는 퇴행과 퇴보의 주범이자 성장의 방해꾼이기에, 성장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면 편협한 사고와 시야를 버려야 한다. 편협한 세상에 사는 사람은 절대 그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끝나지 않는 논쟁의 늪에 빠지고 문명이 발달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게 될 뿐이다.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 매일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해서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성장을 바라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며, 늘 하던 방식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과 불편함을 해결하는 편리함을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 성장을 위해 편협한 세계에서 벗어나, 하늘 높은 곳에서 땅을 바라보는 독수리의 시선처럼 전체를 볼 수 있는 조감도를 가지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싶다.  



필연적 편협 / 라뮤나 / 나비소리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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