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May 06. 2024

같은 일본 다른 일본

겉과 속이 다른 이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마다 일본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읽은 후 아직 글쓰기 하지 못했지만 지난 3월에는 히가시노 게이노의 <화이트 러시>를 읽으며 일본 문학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소설 속 만나는 일본인의 시선이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그들만의 방식을 나에게 전달하지만, 아직 이해하거나 받아 들기에 쉽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아직 일본 문학은 내게 어려운 대상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사를 배우면서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지만, 동시에 우리 민족의 암울한 역사를 만든 일본의 강압적이고 부당한 식민 지배로 인해 일본에 대한 적개심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화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당장 어떤 보복의 행위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정의감으로 포장된 적개심은 힘이 없어 무기력하게 일본의 제국주의에 농락당한 조상들의 한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날이 좋은 날, 오륙도가 보이는 부산 남구의 한 해안가에 가면 저 멀리 대마도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많이 방문하는 해외여행지에 늘 일본은 상위권에 들며, 실제 대마도 입도객의 95% 이상이 한국인이었던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싫어한다고 하면서 일본 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한국인의 입장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섬나라인 일본인 크게 혼슈, 시코쿠, 규슈, 홋카이도 4개 큰 섬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주로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여행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부산에서 오키나와로 가는 직항이 없어지면서 한동안 오키나와를 가지 못했지만, 올해 3월 말부터 직항이 다시 생겨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오키나와의 여행을 꿈꾼다. 이번 가족여행으로 온 홋카이도도 눈이 없을 때 온 것은 처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홋카이도는 아주 낯설다.


 사실 홋카이도는 일본의 북방 개척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토로 원래는 아누이족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척박하고 버려진 땅이었다. 일본인의 개척으로 인해 홋카이도는 일본의 영토로 편입되고 아누이족도 자연스럽게 일본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곳은 변방이며 화려한 도쿄 사람들의 눈에는 촌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혼슈의 양대 산맥인 관서지방의 오사카 사람을 촌사람이라고 하는 관동지방의 도쿄 사람이 북쪽의 섬 홋카이도는 촌사람 중의 촌사람일 것이다.


 이는 같은 나라라 할지라도 모두 같은 모습을 하거나 같은 문화 속에 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빵 하고 총 쏘는 액션을 하면 기가 막히게 쓰러지는 리액션을 해주는 오사카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도쿄인의 반응도, 고즈넉하고 기품 있는 교토의 삶이 지루하고 무미건조하다는 반응도 모두 일본의 모습이며, 일본의 반응이다. 한국인이자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일본의 모습은 전부도 아니며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특히 “겉과 속이 다르다”라는 주된 평가를 받는 일본인의 행동은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생각(다테마에)과 진짜 속마음(혼네)으로 구분되기에 상황과 맥락에 따라 마음을 읽어야 한다. 마치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인 “밥 한 번 같이 먹자”라는 의례적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어 낭패를 봤던 외국인의 푸념과도 같다. 하지만 이런 한국의 사정과 다른 점은 혼네는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두는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들켜야 하는 속마음이며 다테마에는 속마음을 감추는 것이 아닌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5G 통신이 일상이 된 정보통신시장에서도 아직 집집마다 팩스를 사용하는 일본의 사정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녹아 있지만 빠르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마음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런 일본의 아날로그적 생활은 점점 0과 1이 모든 것이 되어가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처럼 보여도 일본인들의 사정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팩스를 보내고 한참 지나도 답신이 없는 것을 이해하는 아량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홋카이도를 여행하며 만나는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치이다. 아무리 손님이 진상이라 할지라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응대를 할 것만 같은 일본인의 태도는 정말 배워야 할 행동이며, 한국전쟁 이후 초토화된 국토에서 절망하지 않고 당시 미국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던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부모 세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와 함께 미래를 살아가야 할 이웃 나라이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 / 김경화 / 동아시아 / 2022

매거진의 이전글 에이징 솔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