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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y 04. 2024

에이징 솔로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현상

 나는 서른 초반 막장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일을 실제로 겪으면서 여자를 믿을 수 없었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5년간 몇 번의 짧은 연애는 결혼에 대한 미련마저 모두 가져가 버릴 정도로 끝이 좋지 않은 만남의 결과였다. 그렇게 혼자 지내야 함을 숙명처럼 여기며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혼자가 좋은, 혼자여서 좋은, 혼자이기에 편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실제 그렇게 살아왔다.


  혼자 살았기 때문에 누구의 잔소리 걱정 없이 야근을 할 수 있었으며 주말 내도록 잠만 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일요일에는 교보문고가 문을 여는 시간부터 문 닫는 시간까지 하루 종일 있어도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이런 자유로움이 혼자 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변에서 아직 혼자 사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참한 여자라며 소개해 주셨지만, 나는 결혼의 단꿈에 빠지기보다는 혼자 살며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더 행복하게 생각했다. 결혼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다짐하며 혼자여서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혼자라고 외로워하거나 무조건 결혼할 짝을 만나기 위한 몸부림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남자가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동성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나를 보았던 사람들은 내가 동성애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낌적으로 알았는지 나도 몰랐던 이상한 소문은 금세 잠잠해졌다. 사실 이성에게 매력을 못 느꼈던 것이 아니라, 이성에게 끌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은 나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모른다.


 주변의 친구나 나와 동년배의 사촌이 결혼한다는 소식에도 불안해하거나 웃어른들의 잔소리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비결은 "결혼 안 해도 좋으니, 아무하고 결혼하지 말라"라고 하셨던 어머님의 적극적인 지지 때문이다. 이런 어머님의 지지는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아무런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미리 걱정하셨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도 혼자 사는 자유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준 사람이 바로 아내이다.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이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다면 평생 결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족하지만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다. 혼자 지내던 습관이 연애 시절 아내를 당혹스럽게 만들 일도 종종 있었지만, 끝까지 나를 믿어 주었던 아내의 배려 덕분에 헤어질 뻔한 일도 별일 아닌 것이 되어 무탈한 연애의 종지부를 찍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올해 결혼 9년 차 부부의 삶은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의 꿈보다는 아이의 미래를 우선시하는 보통 부모의 일상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기 싫어 짜증 내는 아이를 달래느라 회사에 지각하는 아내,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려 피곤하지만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이를 안아주며 하루의 피로를 날려 보내는 나의 모습은 여느 가정집과 비슷할 것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가족과 함께 한다는 공동체 의식과 힘들어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혹시 내가 아내와 결혼하지 못했다면 평생 이런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결코 누릴 수 없는 상상 속의 행복이었을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을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더 이상 혼자 사는 것은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말할 수 없는 사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혼자 사는 것은 감출 일도 아니며 누군가의 수군거림이나 손가락질받을 일도 아니다. 각자의 사정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지, 문제가 있거나 감춰야 할 비밀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에이징 솔로>에서 김희경 작가님은  에이징 솔로가 유별나 보이지 않고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혼자 살기에 신생아 출산의 감소와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서로 맞지 않아 가정의 불화 속에서 참고 살아 화병을 키우는 정신적 감정적 문제를 안고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유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르다는 것이 틀림이 아님을 알며, 다름을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이 있다면 에이징 솔로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 될 수 있다.



에이징 솔로 / 김희경 / 동아시아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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