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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y 09. 2024

홋카이도 가족여행 4일 차

마지막 날 오전을 알뜰하게 보내는 방법

팜 토미타, 천년의 숲


 어제 하염없이 내렸던 비가 그친 숙소 밖은 파란 하늘 아래 검은 대지가 서로의 빛깔을 경쟁하는 듯한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비 내리던 칠흑같이 어두운 산 길을 운전하느라 긴장했는지 온몸에 긴장이 아직 남아 있어 피로가 그대로이다. 또한 홋카이도 동북부에 위치한 비에이 숙소는 방에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추워서 더 경직된 몸을 녹이며 여행의 마지막 날을 준비했다.


 여행의 막바지 아이들은 체력이 바닥났는지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아이들을 달래며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후 가족 여행의 피날레로 향했다. 처남이 어제 맑은 날 청의 호수를 보지 못했던 것이 내심 아쉬웠는지 청의 호수에 다시 가고 싶어 했지만, 오늘 일정인 도카치 천년의 숲과 반대 방향이라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숙소 인근에 있는 <팜 토미타>를 방문해서 허브의 향기에 취하기로 했다.



 


어제 비에이 인근을 다니며 튤립이 피어 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사진에서 보았던 색색의 허브가 피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해 내심 불안했다. 팜 토미타에 도착하니 직원분들이 홋카이도의 검은흙 위에 열심히 허브를 심고 계셨고 내가 상상했던 허브 들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아주 일부분 허브가 심겨 있어, 보랏빛, 붉은빛의 허브가 온 들판을 가득 채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운 좋게 온실에는 허브가 피어 있어 가족사진을 찍으며 팜 토미타의 매력에 빠진 나머지 계절별로 홋카이도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팜 토미타는 라벤더색을 아이덴티티 컬러로 삼았는지, 바이크마저도 라벤더 색이라서 일본의 특유 통일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이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원시림을 만날 수 있는 천년의 숲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팜 토미타에서 2시간여를 달려 천년의 숲에 도착했는데, 도착하는 순간 모두 감탄을 지를 정도로 숲의 향기가 진동하였다. 입장권 구매가 현금만 가능해서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비상금으로 따로 두었던 만 엔을 꺼내 입장료를 계산한 후 당당히 천년의 숲으로 들어갔다. 비 온 후라 그런지 흙의 냄새와 풀냄새, 나무 냄새가 뒤섞인 천연의 호흡을 가슴 깊은 곳까지 내쉬면서 나도 천년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Earth Garden에서 어떤 제약과 제지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나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너무 넓고 좋았다. 천년의 숲, 또 다른 섹션인 Meadow Garden은 온갖 들꽃이 가득한 곳이지만 아직 추운 날씨 때문에 형형색색의 들꽃을 볼 수는 없었다. 세그 웨이를 타고 천년의 숲을 투어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오후 3시 전까지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에 가야 했기에, 훗날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홋카이도를 여러 번 왔지만 오후 1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지막 날 아침은 밥 먹고 공항으로 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오후 5시에 출발하는 진에어를 예약해서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여행 기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오른쪽 운전을 했던 나 자신이 대견스러울 정도로 자랑스러웠고, 우리 가족의 든든한 발이 되어 준 미니밴 세레나가 너무나 고마웠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서 그동안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에서 해방되어 출국 전까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티켓을 받고 출국장을 지나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면세점 쇼핑을 했다. 그동안 사고 싶었던 것을 꾹꾹 참고 있던 아이는 쇼핑 욕구를 분출했고, 아내의 친구에게 줄 선물까지 고르며 나에게 결제의 짐을 넘겼다. 나도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홋카이도의 네 가지 곡물로 만든 음료수를 11개 구매하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무사히 홋카이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아직 어리다고 하면 어린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참여해 줘서 계획했던 일정대로 여행할 수 있었고, 집 떠나 아픈 아이를 걱정하며 괜히 여행 왔다고 자책하는 불상사도 없었던 최고의 가족 여행이었다. 4일간의 일정 동안 무려 이틀이나 비가 왔지만, 홋카이도의 신선하고 깨끗한 비를 맞아가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던 것은 행운이라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올 때 다시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날을 상상하며 하나씩 짐을 풀었다.


 내일 출근이 부담되지만 나는 다시 일상의 나로 돌아가, 내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본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여행의 목적은 떠남이 아닌 돌아옴에 있다는 말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이런 일상으로의 복귀를 말함을 느낀다. 집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일상에 녹이며 떠나기 전의 나와는 다른 한 뼘 더 성장한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또 다른 여행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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