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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May 26. 2024

멸종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

내 전공은 분자생물학이다. 지금도 분자생물학이라고 말하면 뭐 하는 학문이냐고 되려 질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나노 사이즈의 생물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면 “나노 사이즈가 뭐지”라는 의문이 얼굴에 가득 찬 것이 보인다. 나노는 10억 분의 1을 나타내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현미경이 없으면 존재 자체도 알 수 없는 크기이다.


 내가 설명을 어렵게 하는 것 같아  DNA, RNA 등과 같은 유전 물질이나 세포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조금 이해하는 표정을 느낄 수 있다.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만 분자생물학이 어떤 학문인지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 분자생물학은 존재 자체가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는 편히 가장 쉬울 것이다.


 나는 딱히 이 전공을 잘 알거나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라, 졸업 후 의전대에 진학할 대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전공 선택을 했다. 이런 불순한 의도를 가졌기에 전공 수업 시간이 재미있지 않았고, 졸업 가능한 학점을 채울 요량으로 같이 스터디를 해서 수월하게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과목을 주로 들었다.


 간혹 바이러스학이나 내분비학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이것을 평생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당시 ‘BK21(Brain Korea 21)’라는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유망 학과로 선정되어 지원이 많았기에 학점이 높은 동기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미래를 위한 기회이기보다는 졸업의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나는 공부 욕심이 많은 여학생들 사이에 전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강한 외모로 눈에 띄는 남자였다. 강한 외모를 가진 나는 외모로 오해를 많이 받고 살았는데, 나를 대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나 동문을 제외하고는 내 전공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입사 후 내 전공을 묻는 사람에게 전공에 대한 설명과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내 외모와 전공과의 연계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4학년 2학기 때는 전공 수업이 거의 없어 운동하러 학교에 갈 때가 많아 체육교육과 학생들이 나를 보고 선배로 착각해서 인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도 내 주변의 사람들 중 일부는 내가 체육학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지 않았지만, 전공 수업에서 배웠던 지식들은 일상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나노 사이즈의 물질을 공부하면서 디테일한 상호 연관 작용을 주로 배웠지만 이런 작은 작용 하나가 자연 속에서 거대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도 배웠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법칙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자연을 위하고 인간을 위하는 방법인지 알고 있다.



 원시 시대에는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생존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자 목적이었던 인간은 어느새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며 생태계 최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물종이 되었다. 영장이라면 모두를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 알고 있지만 그 방법대로 행동하는 것과는 상당히 먼 거리 차이가 있다. 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처럼, 아는 대로 행동한다면 지금 지구에서 발생하는 생태학적 문제의 거의 대부분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단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거나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소중함을 모르기에 아끼거나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 또한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산소(oxygen)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산소가 없으면 인간은 숨을 쉬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필요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거나 배출하게 만들고, 지구의 온실 효과를 가속시킨다. 이런 기후 변화의 주범이자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정말 다양한 생물종을 빠른 속도로 멸종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대항해시대에 인간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수많은 종의 생물들은 빠른 속도로 멸종했고 지금도 멸종 위기종에 처한 생물들이 많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필요 이상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결국에는 멸종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선택했다. 예를 들어 호주 대륙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호랑이, 늑대의 생물학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던 태즈매니아 호랑이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지만 자연을 대하는 자세나 자연에 대한 지혜를 거의 없는 행동을 하는 무늬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어리석음은 인간 외의 동식물을 멸종의 길로 인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도 같이 멸종의 길로 간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동식물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런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지구도 결국 인간조차도 살 수 없는 공간이 될 것이다.



 하나만 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연계의 수많은 법칙과 순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존재는 없다는 인간의 다양성은 지구의 다양성과 생물의 다양성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생명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존귀한 지구상의 수많은 동식물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아무리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식물이라 할지라도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인간에게 해를 주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한데 인간이 그들의 서식지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사스도 메르스도 사향고양이와 낙타가 주 매개체로 알려졌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던 바이러스가 유독 인간에게만 악영향을 주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에서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에게는 면역계(immune system)가 있다. 자신을 제외한 외부에서 침입한 모든 물질을 적으로 간주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장치이다. 최근 모두를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갔던 코로나19도 이런 면역계의 방어를 무참히 망가트린 바이러스로 변종이 많아 쉽게 대응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백신을 개발했고 코로나의 공포에서 살아남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다.


 또 어떤 바이러스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는 과정에서 인간은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어 자신의 면역계를 지키려고 하겠지만, 인간의 면역계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생태계(eco system)를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영역이 아니면 침범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관찰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이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지배하고 무참히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무지의 소산을 만들었다. 생태계가 망가지만 면역계도 자연스럽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구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은 4년 안에 멸종한다”라는 경고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미물이라고 생각하는 꿀벌은 자신의 언어와 고도로 사회화된 곤충이며,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꿀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꿀벌을 통해 번식하는 식물, 그 식물을 먹고사는 곤충과 이 곤충을 먹고사는 작은 동물, 이 작은 동물을 먹고사는 큰 동물 등이 복잡한 먹이 사슬을 이루고 있다.


 이 먹이 사슬이 무너진다면 생태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늑대가 사라진 요세미티 공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너무나 뼈아픈 교훈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벼락을 맞고 죽은 수 천 마리의 순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순록을 그대로 방치하면 설치류가 들끓어 문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뒤로하고 결국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자연에게 맞기는 것이었다는 것도 증명했다.  


 만물의 영장이자 지혜의 사람,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인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대상이다. 이제 더 이상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는 행동을 그만하고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행동을 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자연계에서는 자연계의 법을 따라야 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계의 법을 지키며 살아갈 때 인간은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가 될 것이며 인간종으로 인간만의 다양성을 발휘하는 생명체가 될 수 있다.



최재천의 곤충 사회 / 최재천 / 열림원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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