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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02. 2024

삶의 경직을 피하는 방법

인생은 사십부터, 윌터 B 피트킨

 공자는 위정편에서 마흔은 불혹, 미혹하지 않는 나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마흔이 되면 엄청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흔이 되니 나이가 많다고 느끼지 않고 정말 어중간한 나이대라는 생각이 든다. 혈기 왕성한 20대를 지나, 사회생활 경력이 조금 쌓인 30대를 보내고 어떤 일이든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을 쌓은 40대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와 위에서 눈치를 주는 선배들 틈에서 눈치를 보는 이른바 낀세대이다.


 진급에 밀려 더 이상 승진을 하지 못하는 만년 과정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임원으로 승진하기 위해 라인을 잘 타기 위해 노력하고 끝나지 않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에서 40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언제나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사직서를 멋있게 던지고 싶지만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눈치도 봐야 하는 세대이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 없는 40대는 꿈이 있어도 꿈꿀 수 없으며,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녀에게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부모의 희생으로 자라난 자녀는 부모의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캥거루족이 되어 영원히 부모의 슬하를 떠나지 않고 안락함과 편안함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면 부모는 자녀가 독립하기 전까지 부양해야 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혹여 30대 중반이 넘어 결혼을 했다면 60대가 되어야 자녀가 성인이 되기에 노후 준비는커녕 자녀 양육하는 것도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녹록하지 않기에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도 생기는 것이며, 결혼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거나 결혼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비혼주의자도 있을 것이다. 3포세대를 넘어 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계속적으로 생겨나면서 어쩌면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어느 정도의 과업을 이룬 40대는 새로운 시작으로 인생의 활력을 더해야 하는 시기이다. 익숙한 것을 뒤로하고 새롭고 신선한 것을 배우는 것을 즐겨야 하고, 거부감을 가지면 안 된다. <인생은 사십부터>에서 윌터 피트킨은 마흔에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을 살기 위한 기본자세로  제대로 <읽고>, 정확한 의미로 <쓰고>, 자신의 뜻을 명료하게 <말하고>, 사려 깊게 <관찰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마흔부터는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며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마흔 이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단순한 삶(simple life)과 구별되는 단순화된 삶(simplified life)을 통해 자아실현과 아무 상관없는 일체의 노력을 기술적으로 삶 속에서 추방해야 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질에 집중하기 전에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는 노력이 앞으로 남은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지금까지 내 안에 축적된 익숙함과의 결별을 선포해야 하며 내가 알고 있었던 지식에 대한 의심을 해야 한다. 기존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녕 맞는 것인지 의심하며 새로운 질서를 익히고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미 만들어 놓은 정체성을 모조리 부셔야 한다. 새로운 정체성은 기존 정체성과 양립할 수 없기에 이전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여 새로움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미 만들어 놓은 정체성의 파괴를 위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부정할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지식이자 상징인 “시간은 돈이다”라는 개념과 지식을 부정한다. 시간은 돈이 아니며 시간을 돈이라는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의 시간을 회사라는 공간에서 사용하여 월급을 받는 사람이지만 나의 시간이 곧 월급이라는 말은 아니다. 시간은 삶이며 살아있는 존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생명의 본질이다.


 작년 인생 단어 중 하나인 시간의 밀도를 알게 되어 어둡고 고요한 새벽, 진정한 나를 만나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했다. 이런 나만의 시간은 더딘 성장으로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나를 만난다는 것은 성장을 위한 시간이 아닌 성숙을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익지 않은 과일은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성숙으로 무르익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마은 이후 무르익는 사람이 되고 싶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인생은 사십부터 / 윌터 B 피스킨 / 사이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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