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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l 08. 2024

고민의 고민을 더하기

고민하는 자만이 자신을 구한다, 간다 마사노리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서 경험한 몇 개의 직무 중 지표관리를 할 때 모셨던 상사님은 마성의 남자였다.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매력적인 분이었기에 참 닮고 싶었고 오랜 기간 모시고 싶었지만 워낙 유능하셔서 만난 지 일 년 만에 서울로 영전하셨다.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로 보고서를 쓰고 기획안을 만들어야 하는 내 업무는 늘 창작의 고통과 유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멍하니 있을 때 나를 조용히 부르셔서 상사의 집무실에 앉아 같이 기획안을 만들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던 A4 용지가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과 함께 떠오르는 생각으로 채워졌던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고는 고민하는 것도 좋은데 일단 떠오르는 것을 모두 종이 위에 연필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멋진 기획안이 나올 것이라고 위로해 주셨다.



 기획 업무로 괴로울 때마다 군 복무 중 교육 훈련안 작성에 달인이셨던 작전과장님이 떠오르면서,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0.9mm 샤프를 급하게 찾았다. 0.5mm 샤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단단함으로 언제 어디서라도 종이만 있다면 기록하게 만들어준 도구이다 기획안을 작성하는데 젬병이었던 나를 외형만은 프로급 기획자로 만들어주었던 비장의 카드였다.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A4 용지를 뚫어져라 바라봐도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지만 주어진 과제에 대한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몇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딴생각한다고 혼나기도 했지만 나에게 고민은 딴생각이 아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연결을 찾고자 하는 시도였다. 마법의 0.9mm 샤프로 이것저것 쓰다 보니 처음에는 말되 안 되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점점 기획안의 모습으로 변했다.



 지금도 종종 기획안을 만들 때면 양식화된 템플릿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 애초 템플릿 제작 고민을 하기 싫어 공통화된 틀을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이는 화려한 외형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내형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아무리 창의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다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드물다.


 없는데 생긴 것, 있다가 없어진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이런 변화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보다 창의적인 사고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다. 정답을 찾기 위한 제로썸에 가까운 에너지 소모전이 아닌 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해 실패를 반복하는 것처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도 99번의 실패를 안 되는 99가지 방법을 찾은 것이라 말한 것과 동일하다.


 사실 기획안이라는 것도 문제 해결을 위한 나의 생각, 나의 제안이라는 개념이 강하기에 나의 기획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획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시험에 낙방한 것처럼 절망하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낙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정답이 맞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적용할 수 있느냐 적용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민은 안 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다만 고민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의 흔적을 직접 시도하고 생활에 적용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민만 한다면 몽상에 가까울 것이고, 오랜 시간을 드린 고민의 흔적도 눈에 보이지 않으며 순간 사라지는 연기처럼 없어질 수도 있기에 고민의 흔적을 기록하고 그 흔적을 통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온갖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민하는 자만이 자신을 구한다 / 간다 마사노리 / 빌리버튼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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