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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정의

돌아오지 못한 해병, 구용회

by 조아

집에 TV가 없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볼 일이 없지만 요즘 스마트폰을 이용해 꼭 챙겨 본 것이 있다. 바로 채상병 순직 관련 국회 청문회인데, 유튜브로 볼 때마다 정말 큰 실망과 아쉬움이 남았다. 한때 군인으로 살고 싶었던 나였기에 내가 생각한 대한민국 군대가 이 정도로 명예롭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한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특히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장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차마 상상하지도 못했을 정도이다.


군 입대를 하면서 전직 군인이셨던 아버지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다. 그때는 단기복무를 할지 장기 복무를 할지 결정하지 못 한 상황이었기에 장기 복무를 감안해서 조언해 주셨는데, 진급을 잘하기 위해서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등 내가 복무할 시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먼저 군 생활하신 아버지의 경험담이자 노하우였다.


특히 진급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항상 정의롭게 생각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라고 알려주셨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라도 진급을 위해서라도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해야 할 상황에서 갈등하게 된다면 정의롭게 행동하라는 당부의 말이기도 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보았던 아버지의 빛나는 계급장 뒤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고뇌와 어려움이었다.



한 가지 더 당부하신 말씀은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보다 못하다”라고 하시며 절대 다치지 말고, 모든 상황에서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며 내가 책임져야 할 병력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녹색 견장을 달게 된다면 모든 결과의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책임질만한 행동만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혈기 넘치던 20대 청춘이 군 복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명예로운 행동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군대에 끌려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군 복무에 대한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군 복무를 같이 하는 인원들에게 항상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군 복무를 1년 정도 했을 때 당시 언론에서도 뜨겁게 보도했던 GP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당시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전시에서 작동된다는 프린터에서 생전 처음 보는 지령이 출력되었을 때 혹시 모의 훈련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실제 사건이었고 밤새도록 적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실탄까지 준비한 상태로 해가 뜰 때까지 정신없이 전화받고 보고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주둔지에 있던 전 병력이 한 밤중에 일어나 경계 강화 태세를 하는 등 모든 이의 신경이 날카롭게 세워져 있었다. 아침이 되자 적 도발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그다음 날 뉴스를 보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GP 경계 근무병이 GP장과 부대원에서 실탄 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한 끔찍한 사고였다. 당시 순직하신 GP장은 나보다 1년 선배님으로 전역 4개월을 앞둔 상황에서 어이없는 순직을 하셨다.


사고가 났던 GP를 관할하는 부대는 내가 있던 부대 바로 옆이었는데 상급부대에서 정밀진단을 나오고 군사경찰(당시는 헌병대)에서 조사 나오는 등 정신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넌지시 들었다. 인사사고가 났으니 당연하겠지만 총기 난사 사건이라 정말 일어나면 안 되는 사건이기에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사고가 2023년 또 일어났다. 바로 해병대 1사단에 근무하던 채수근 상병(사고 당시 일병)이 태풍 피해 인명 수색 작전 도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고이다. 부대의 정체성 자체가 상륙 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가 급류에 휩쓸렸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 수륙작전장갑차도 지탱하지 못하는 급류에 구명조끼는 고사하고 그 어떤 안전장치도 지급되지 않은 상황이라 해병대가 아니라 해병대 할아버지가 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장에 있던 수많은 지휘관과 지휘자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나도 군 복무 당시 수해복구 작업을 몇 번 나갔지만 당시 내려온 지침은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 것, 위험 상황에서는 현장 지휘관(자)이 판단해 보고 후 조치받을 것 등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에 기반한 임무 수행을 하였다.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부터가 직무 유기고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관할 지역이 아니라 통제권이 없었기에 지시가 아닌 지도를 했다는 사단장의 발언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현장에 있던 병력은 누구의 병력이며 누구를 상관으로 모시고 있는지 몰랐단 말인가.


아무리 관할 지역이 아니라도 나의 직속상관의 입에서 나온 명령은 내가 일순위로 해야 할 임무이다. 상관의 말이라면 절대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해병대에서 가당키나 할 행동인지 의심스럽다. 해병대 1 사단장을 포함해서 청문회 과정 중 고위 장교들은 대한민국 군대의 암적인 존재인 정치군인으로 보였다. 계급에 대한 명예는 고사하고 자신의 자리만 지키기 급급한 장성들이 과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 눈에 보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처럼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책임지는 행동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말의 책임을 지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게 만든 누군가의 명령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가리고 보호하려는 행동을 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다는 말처럼 진실은 반드시 세상에 나온다.


진실이 규명되었을 때 청문회에서 무엇이 무서워서 증인선서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된다. 내 소신이기도 하지만 군인과 목회자는 권력과 돈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진실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들은 권력에 지배당하거나 돈과 관련된 의혹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채상병 순직 사건의 수사 보고서가 무려 900 페이지가 넘는다. 밤새도록 천장의 인쇄물을 출력하고 재본한 경험이 있는 나는 그 숫자의 어마어마함을 잘 안다.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로 수사관들의 노력이 담긴 보고서는 권력의 힘에 의해 진실이 덮혀졌고 박정훈 대령님은 항명 수괴죄로 입건되었다.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진실되고 정의로운 사람들에 의해 진실은 규명되고 정의가 바로 세워질 것이라 믿는다.



한때 군인이었던 나에게 군인은 명예로 먹고산다는 말은 아직도 가슴 한 편을 뜨겁게 하는 말이다. 그 명예가 좋아서 명예가 가득 담긴 계급장이 좋아서 군인을 하고 싶었지만 나도 진급과 관련된 상황이라면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했더라면 정말 부끄럽게 여기고, 그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전역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군대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모든 정치군인은 사라져야 한다.


나도 그들도 연약하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 명예롭지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했다는 판단이 들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면 책임을 지고 그에 따른 모든 것을 수용하면 된다. 안타까운 사고로 생명을 읽은 채수근 상병과 그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작가로 사회의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정의롭고 명예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나의 자리에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돌아오지 못한 해병 / 구용회 / 메디치미디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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