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박물관 순례 2, 유홍준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황현필 선생님처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분 못지않게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잘하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의 근원은 역사를 좋아하는 것에서 비롯되어 유적지를 지날 때마다 내 안에서 꽃 피는 관심과 궁금증의 모태이기도 하다.
일 년에 다섯 번 정도는 경주를 방문하는데, 경주 토박이인 후배의 주장을 빌리자면 천년 고도인 경주는 땅 10cm만 파도 유물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말처럼 전 지역이 역사의 흔적이 숨어 있는 곳이다. 실제로 경주에서는 일정 깊이 이상의 땅을 파야 하는 경우는 시청에 신고를 하고 작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특히 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자리에서는 성인 남성 손바닥 정도 크기의 ‘임신서기석’이 발견되었는데 한자, 한문의 표기 방법 중 훈석식(한국어의 어순대로 한자를 쓰는 방식) 표기법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금석문이다. 화랑도의 세속오계 중 ‘교우이신(交友以信)’에 대한 것도 명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경주뿐만 아니라 김해에도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금관가야의 유물까지 발견된 곳이 많아 김해도 전 지역이 역사의 흔적이 숨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가야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 포함되지 않아 역사적으로 홀대받기도 했지만, 뛰어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연맹체에서 고대국가로 성장하려고 했던 금관가야는 역사적으로 절대 홀대받을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아무리 패자가 위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고 역사의 패자이기에, 패자의 역사는 어설픈 문화이며 위대하지 않은 기술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한다. 가만히 두어도 승자의 문화에 흡수되어 사라질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승자는 패자의 흔적을 세상에서 지우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고려의 수많은 사찰과 불상, 탱화 등이 유학의 나라 조선 시대에 사찰이 폐사되고 불상이 파괴되며 탱화가 불에 탄 것을 보면 승자의 행동은 신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불교를 대했던 조선의 방식과 달리 패자의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했던 나라도 있었기만 보통 패자의 흔적은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잃어버린 땅을 지배했던 고구려와 발해의 흔적은 더더욱 그렇다.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 있는 광개토태왕 비의 모조품을 보면서, 실제 광개토태왕 비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상상해 보아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자부심과 웅장함이 타오를 것 같다. 우리 조상이 남긴 흔적인데 마음대로 볼 수도 없고, 우리 조상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해할 수 없다.
고구려의 흔적도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한반도 서쪽 영토만을 지배했던 나라가 아닌 위대한 해상 왕국이었다. 뛰어난 금속공예술과 목조 기술, 석조 기술을 가졌던 예술과 기술이 뛰어났던 나라로, 불국사를 창건할 때 석가탑을 만든 백제 석공 아사달의 이야기만 들어도 백제인이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백제 금속공예술의 백미로 알려진 백제금동대향로는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되어 백제의 기술을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원래의 것을 볼 수 있는 축복 그 자체이다. 반짝이는 금빛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오묘함과 신묘함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일 것이다. 어떤 의식을 지낼 때 이 향로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백제금동대향로 때문에 의식 자체를 신비로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백제뿐만 아니라 신라도 뛰어난 금속공예술을 가졌는데 신라 왕릉에서 발견되는 금관은 황금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던 신라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는 얇은 금박을 입히는 기술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라인이 금세공에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금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랍의 역사서에도 신라를 ‘바실라’라고 부르며 황금의 도시인 경주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신라에 편입되어 사라진 가야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던 가야 연맹체도 김해 금관가야, 함안 아라가야, 고령 대가야, 고성 소가야, 상주 고령가야, 성주 성산가야 등 6가야로 퍼져 있었다. 가야의 역사는 문헌상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들이 지배했던 땅에는 엄청난 유물이 묻혀 있어 문헌을 뛰어넘는 그들의 문화와 기술을 알 수 있다.
특히 함안에 있는 말이산 고분군에 가면 불꽃 문양 토기로 유명한 아라가야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13호 분 덮개돌에 있는 구멍은 지금도 똑같은 별자리라는 것을 통해 5세기 경 아라 가야인의 천문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덩이쇠, 철갑옷, 마갑 등, 쇠를 다루는 뛰어난 기술이 아라가야를 더욱 빛나게 한다.
창녕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던 비화가야도 비봉리 패총과 교동, 송현동 고분군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며 위대한 문화를 이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조상이 남긴 유물들의 상당수가 일본에 있다는 것으로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어떤 힘도 써보지 못하고 빼앗겼다는 것에 분개할 뿐이다.
한때 우리는 역사의 패자로 살아왔지만 더 이상 역사의 패자라고 인식하면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기에 현재를 사는 후손도 뛰어난 문화유산을 누리는 승자이다. 더 현실적으로 역사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정확하게 우리 조상의 흔적을 알고 연구하며 유물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를 비롯하여 내 후손이 빼앗긴 조상님의 흔적을 되찾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며, 정부도 역사학회도 협력하여 국외로 반출된 우리의 문화유산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어렵고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조상이 남긴 수수께끼를 풀며 과거로 돌아가는 열쇠인 타임캡슐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만들 것이다.
국토박물관 순례 2 / 유홍준 / 창비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