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관계의 출발점

나와 잘 지내는 연습, 김영아

by 조아

아이가 제법 말을 잘하게 되었을 때,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아빠도 처음이니까 조금 이해되지 않다라도 아빠를 조금만 이해해 줄 수 있어?”라는 말에 아이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러겠다고 말하며 나를 안아 주었다.


순간 눈물이 울꺽 쏟아질 뻔했지만, 아이 앞에서 울면 아이가 슬퍼할까 봐 겨우 참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빠를 보아만 왔지 내가 아빠가 된 것은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다. 나의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는지 생각해 보아도 오래전 일이라 잘 떠오르지도 않고, 경상도 남자라 아버지와의 관계도 대면 대면하기에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왔는데, 사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내가 아빠가 되면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중 하나를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내가 아빠가 된 것보다 드라마가 먼저 방영되어 우선권을 잃은 것이 아쉽지만, 첫아이를 만난 모든 아빠가 다 초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빠가 되면서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던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좋은 것을 보면 아이에게 주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이 식당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점점 부모가 되어감을 느낀다.


사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딱히 좋지 않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누나를 더 편애했다는 생각에 어릴 적부터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더 좋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한테 하는 것이 더 편했다. 아버지한테 말하면 괜히 혼나기만 할 것이 분명했기에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10년, 20년 살다 보니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말하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이 본가에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인데, 이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아버지와 매형까지 함께 있는 시간이다. 모두 경상도 남자라 서로 말 걸기도 불편하고 어렵다.



가장 아랫사람인 나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자 피하고 싶은 순간이라 어머니가 시장 가신다고 하면 이 순간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자진해서 모시고 나간 적도 있다. 어머니도 나의 마음을 아시는지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먼저 외출을 권유하실 때도 있지만 혹여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거절했을 때도 있었기에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부자 관계는 내 의지로 선택한 관계는 아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었고, 이를 무르거나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와 있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내 외모가 아버지와 닮았고 성격까지도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점이 더 힘들다.


내가 아버지 아들이기에 외모가 닮고 성격이 비슷한 것이 당연하지만, 이 당연함 속에 아버지를 더욱 어렵게 느끼는 원인이 들어 있다. 아버지의 성격과 달리 외향적이고 친근한 성격이었다면 아버지 앞에서 재롱도 부리고, 어리광도 부리기도 했지만 나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다.



내가 아빠가 되면서 가끔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하는데, 나와 아버지의 관계가 대면 대면한 것처럼 나와 아이의 관계도 대면 대면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부자관계가 아니라 부녀관계나 나와는 달리 아이가 온갖 애교에 재롱을 부려 나의 마음을 녹일 때가 더 많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도 내가 그렇게 편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지옥 같은 곳이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랑 함께 있는 공간일 것이다. 특히 어떤 인위적인 방법으로도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관계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부부야 이혼하면 남이 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이혼할 수도 없고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설령 어느 한쪽이 죽더라도 내 부모, 내 아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지옥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나의 근원이자 나의 뿌리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기에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렵지만 내 아이가 느끼기에는 나와의 관계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내가 먼저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아이의 입장에서는 내가 무섭고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감정코칭과 상담심리학을 배운 내가 먼저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지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두 번 정도 읽었다. 나치 정권의 참혹함이 유태인을 세상에서 멸종시키기 위해 인간의 탈을 벗어던졌을 때,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예전에 거제도에 있는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포로가 된 사람에게 과연 희망이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악랄하기로 유명했던 나치의 수용소에서 희망이라는 것은 존재하기는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매일 식수로 마실 물을 아껴가며 깔끔하게 면도를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쓴 원고를 빼앗겨 출간의 기회도 박탈당했지만 빅터 프랭클은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고 죽음의 공포가 드리운 수용소에서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인생은 모든 것이 처음이라 할지라도 결국 인생은 실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인생은 실전이 아닌 연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전은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어떤 인생에 단 한 번의 시도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인생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결국 모든 것이 연습이다. 군 복무 중 수도 없이 들었던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란 말처럼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을 실전처럼 하면서, 실전의 관계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지 않고 연습하는 것처럼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을 할 것이다. 진정으로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싶고, 아이와도 건강한 관계를 맺고 싶다.



나와 잘 지내는 연습 / 김영아 / 라이스메이커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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