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과 재 속의 작은 불씨(상), 이소현
나는 결혼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사람이어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부모님도 이런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시고, ‘아무 하고나 결혼할 거면 안 하는 것도 좋다고’하시며 나를 지지해 주셨다. 나는 결혼을 안 하겠다는데, 내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 연배의 나를 아시는 분들이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중매를 해주시고자 했지만, 나의 고약한 성격을 핑계 삼아 정중히 거절했다.
처음부터 결혼을 하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20대 후반 너무나 심각했던 연애의 후유증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특히 여자를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 차서 내 또래 여성은 물론 모든 여성과의 대화를 사무적으로 하며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굳이 서로 얽혀서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아, 인연의 끈을 내가 먼저 싹둑 잘라버렸다.
그렇게 혼자 지내다 서른 중반 늦은 나이에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가 태어나 부모의 마음을 느끼며 아이가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만약 혼자 살았다면 이런 축복을 누릴 수도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내보다는 아이가 모든 것의 먼저
된 것에 아내도 살짝 서운함을 느낄 수 있지만,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가 모든 결정의 우선순위가 아닐까 한다.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풋풋한 첫사랑의 허무한 아픔이 지나고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는 교회와 학원 말고는 내 또래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학원에서는 수업을 따라가느라 이성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었지만, 교회에서는 이성과의 친교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 몇 번의 소개팅과 짧은 연애로 이전과는 다른 이성 교제를 했었지만, 그 어떤 만남도 내 마음속에 불꽃이 터지거나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다 하니까, 다른 사람은 애인이 있는데 나만 없으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 하는 마음에 이성 교제를 한 것이라 지금 생각하면 상대방에게도 솔직히 미안하다.
물론 연애가 무조건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연애와 결혼은 원천적으로 다른 것이다. 흔히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이 아닌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는 말처럼 고려해야 할 것이 참 많다. 언제부터 이런 결혼제도가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조건을 따지거나 결혼제도를 고려할 입장이 아니었다.
아내가 아니라면 평생 결혼을 못 할 것이라 느껴서 아내 입장에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결혼하자고 먼저 말했다. 약 일 년 정도의 짧은 연애를 끝으로 결혼했고 신혼 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융합되기 어려워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고 있다.
아칸소라는 미국의 중부 도시, 빌 클링턴 대통령 부부의 고향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미국의 작은 주에서 유학 중인 지현처럼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불꽃이 터지는 사랑을 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나를 스쳐 지나간 인연 중 내가 억지로 거부하며 인연의 끈이 연결되는 것을 막은 사람을 떠올려 보면 내가 스스로 그런 황홀한 감정을 버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은 연애의 황홀한 감정과 화려함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수많은 현실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얼마 전 브런치 스토리에서 읽은 지소 작가님의 <엄마는 도박 중, 딸은 유학 중>이란 연재 글을 보면서 부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로 결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혼을 연애처럼 했다가는 참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책임한 연애의 종말이 정말 끔찍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밤하늘을 빛나게 만드는 불꽃은 영원하지 않다. 한순간 화려하게 타오르다, 금세 사그라들어 재가 되고 만다.
수년째 보고 있는 부산 불꽃 축제나, 홋카이도 도야 호의 한 호텔에서 본 불꽃쇼를 볼 때마다 불꽃의 화려함 이면에 보이지 않는, 어쩌면 볼 수 있으나 보려고 하지 않았던 시꺼먼 재를 통해 화려함만을 추구하려는 태도의 비극적인 결말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화려함보다는 일상의 소중함을 추구하고 찾기 위해 노력한다. 나 자체가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기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소유하거나 추구하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것,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통해 일상의 소소함을 채우고, 그 소소함으로 일상을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 인생의 채워갈 것이다.
불꽃과 재 속의 작은 불씨(상) / 이소현 / 좋은땅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