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가 된 후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정말 달리기 어려운 시절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이라 눈이 내리거나 눈이 쌓이는 일은 없지만, 겨울이 주는 차가운 기온과 시베리아 대륙의 바람을 연상하게 하는 매서운 바람은 달리기를 하는 데 있어 최악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몸이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특히 꽁꽁 얼어붙은 발에 전달되는 충격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다.
한 번은 부착형 핫팩을 신발에 넣고 달려보기도 했는데 중간에 다시 빼 버릴 정도로 너무 뜨거워서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2km 정도 가볍게 걸으면서 몸을 예열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어서 걷기와 달리기를 혼합해서 연습한다. 겨울일수록 부상 예방을 위해 웜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기에 더욱 이 시간에 신경 쓴다.
평일에는 이렇게 여유를 부리기 힘들고, 새벽녘 차가운 공기는 좋지만 몸이 얼어 있는 상태로 달리기를 강행하는 것이 아직 무리라고 판단해서 지난주는 주로 퇴근하고 걸었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느라 일이 많아 하루 2km를 걷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잠깐 졸다가도 11시 30분에 일어나 1km의 거리라도 잠시 걷고 다시 들어올 정도로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화장실 사건 이후로 달리는 것이 조금 두렵다.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달리다 쓰러지는 것보다는 달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병원 가는 것조차 거부했던 나이기에 충분히 몸이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달리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오랫동안 부상 없이 건강하게 달리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에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느꼈다.
하지만 욕망은 억누를수록 작은 틈을 찾아 밖으로 나오려는 성향이 있다. 걸으면서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을 보면 나도 달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를 수 없어, 가볍게 달렸지만 약하게 느껴지는 어지럼증이 더 심해질까 봐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다. 평소 달리던 길을 걸으며 지난날 이 길을 달렸던 시간을 떠올리며 다시 달릴 수 있는 몸상태가 되기를 소망했다.
혹여 "다시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이 엄습하며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갔지만,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달리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상의 루틴까지 바꿨던 달리기라서 더욱 소중한 일상의 순간이자 과업이기에, 다시 달릴 이유를 찾아 달리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고 싶었다. 어지럼증마저도 적응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지난 토요일 런데이 에필로그 마라톤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감정코칭 수업과 일정이 겹쳐서 일요일 점심때 달릴 계획을 했고, 생각보다 따뜻한 날씨여서 부담 없이 달릴 수 있었다. 2km 정도의 거리를 걸으며 웜업을 하고 혹시 모를 걱정이 가득한 마음으로 천천히 달렸다. 천천히 달려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5분대의 페이스가 나와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왕 시작했기에 몸이 거부 반응을 보일 때까지 유지해 보았다.
3km 구간까지는 5분대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고, 심박수가 너무 높아서 페이스를 늦추며 천천히 달렸다. 10km 마라톤이라 일단 시작했지만, 달리는 중간 이상을 느끼면 즉시 멈출 요량으로 달렸기에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5분대의 페이스가 나오면서 달리기 전 에너지젤을 먹은 효과라고 생각해서 욕심을 내었다.
심박수가 170까지 치솟아 페이스를 강제로 조절해야 했지만 1시간 안에 완주하기 위해 노력했고, 비록 1시간 안에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10km 마라톤뿐만 아니라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달릴 수 있어서 행복했고, 달릴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드는 것도 달리기의 일부이기에 더욱 건강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을 느끼며 달리기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경험한 초보 러너의 단면이다. 오랜만에 달려서 조금 힘들었지만, 매일의 달리기를 꿈꾸는 러너이기에 처음 경험하는 겨울의 시간동안 오늘의 경험이 주는 단면에서 끝나지 않도록 더욱 부단히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