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을 달리기로 채우는 방법
직장인인 내가 출근하면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 바로 퇴근시간과 점심시간이다. 특히 점심시간만 생각하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창희(이민기)는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대해 말한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 "직장인의 낙"으로 표현되는 점심시간은 단순히 점심을 먹으며 배고픔을 해결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삼삼오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술이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주말 나들이에 대한 이야기, 육아 이야기, 소개팅 이야기 등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을 나누며 동시에 오전 업무 중 직장 상사한테 깨진 심정을 공유할 수 있는 직장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시간보다 위로가 되는 순간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내가 살았던 지역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밥을 엄청 빨리 먹는다. 속식도 문제이지만 맛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과식을 즐겨했다. 속이 꽉 찰 정도로 느끼는 포만감이 있어야 밥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반적이지 않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보다는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음식이라면 점심식사 메뉴로 좋다고 여겼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촉박하게 점심을 먹는 것보다는 더 효율적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은 '웨이팅 맛집'보다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곳을 더 선호했고 정식이 아닌 분식이더라도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다고 느낀 저렴한 입맛의 소유자였다. 여기에 나만의 낯가림까지 더해져 함께 일하는 팀원을 제외하면 소수의 몇 명과 점심을 먹었다.
전 세계적으로 몰아친 팬데믹,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는 도시락을 싸다니며 회의실에서 현미식물식을 했고 지금은 주로 과일단식을 하며 혼자 점심을 먹는다. 빨리 먹고 책을 읽거나 카페에 들러 글쓰기를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점심 달리기를 할 궁리를 한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사무실 창밖을 보면 옆 건물 같은 층에 헬스장이 있었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익숙한 얼굴이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것을 보고 "점심시간을 저렇게까지 보낼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내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으니 참 우습기도 하다.
두 번의 시도만에 어제 점심 달리기에 성공했고 겨울이지만 날이 너무 따뜻해,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여 상의만 갈아입고 청바지를 입은 채 20분 정도 달렸다. 영상 11도의 날씨라 조금 달렸더니 이마의 땀이 흥건하게 날 정도였다.
부산 특유의 바닷바람이 쌀쌀하기는 했지만 새벽 달리기를 하지 못할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기에 청량감을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1시간 달리기를 하고 싶었지만 청바지까지 땀에 젖으면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20분만 달리고 마무리했다.
"달리기로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차 안에서 사과를 먹었다. 물론 과일단식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추운 겨울, 효율적으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뜻한 햇빛이 충만한 오후, 달리기로 채우는 나만의 점심시간 앞으로 기대된다.
생명이 소생하는 봄이 오기 전까지 이렇게 점심시간을 보내며 처음 맞이하는 러너의 겨울을 보낼 것이다. '강도보다는 빈도'에 더 중점을 두고, 'snake sense'처럼 기회를 포착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게 꽉 잡으려고 한다. 이제 3월까지 나의 점심시간은 달리기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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