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지가 너무 깨끗하지는 않았나요, 나처럼.
“나는 하얀색 바지 잘 못 입겠더라. 뭐가 묻을 것 같아.”
언젠가 친구가 한 말. 물론 동감한다. 하얀색 바지를 입은 날은 속옷이 비칠까 염려가 되기도 하고,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자주 옷을 살피게 되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묻을 준비’쯤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른 교통수단과는 달랐다. 한국과 다를 바 없는 택시와는 당연히 달랐고, 여러 사람들이 타서 시끌벅적하던 지프니와도 달랐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만든 트라이시클은 운전수가 페달을 젓는 만큼 나아가기 때문에 느렸고 바콜로드 작은 동네의 거칠고 우툴두툴한 길바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엉덩이도 아팠다. 게다가 필리핀의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에는 충분치 않은 햇볕가리개가 비를 막기란 더 가당치 않은 일이라 날씨가 좋을 때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솔솔 부는 바람을 맞는 일은 꽤 기분이 좋았고, 옆에서 힘차게 페달을 젓는 트라이시클 운전수는 꼭 어릴 적 나를 뒷자리에 태우고 쌩쌩 달리던 오빠도 떠올리게 해 정겨웠다. 또 까맣고 거친 그들의 발을 보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사는 삶’과 같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 그저 까맣고 거친 발이라서 열심히 사는 삶이라니. 꼭 ‘우리네 사는 모습’과 같은 제목으로 새벽 시장과 공사 현장의 모습의 사진 같은 느낌일까? 너무나도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비유이지만, 그래도 내게 그들은 그랬다. 열심히 사는 모습. 그리고 정직함.
필리핀은 영어가 세컨드 랭귀지라고는 하나, 트라이시클 운전수들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저 그들과 내가 할 수 있는 대화라고는 '10페소?' 혹은 '10 minute?' 정도. 고작 이용요금과 시간만 얘기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타고 내릴 때 서로에게 짓는 미소만 있으면, 어떤 말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루는 볼일을 마치고 빌리지 입구에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제법 안면이 있는 트라이시클 운전수가 나를 향해 쌩쌩 달려왔다. '아, 오늘은 걸어가고 싶은데.' 하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내 앞에 끼익 서더니 알 수 없는 말로 무어라 길게 말을 했다. 그가 나에게 어떤 말을 그렇게 길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따갈로그어는 기본적인 말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what?"하며 손을 흔들며 오늘은 타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만하면 돌아갈 줄 알았건만 운전수는 그 날 따라 유난히도 나를 향해 잔뜩 흥분한 채로 무어라 무어라 말을 하며 떠나지 않았다. 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참 듣던 나는 포기했다는 듯, 선심 쓴다는 듯이 트라이시클에 앉았다. 표정은 잔뜩 구긴 채로.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동네 초입을 넘어서자 군데군데 아주 큰 물 웅덩이가 있었고 그 위를 쌩쌩 달리는 트라이시클을 따라 흙탕물은 고스란히 튀어 내가 입고 있던 흰색 긴 바지는 얼룩이 져갔다. 오 마이 갓. ‘타기 싫다던 나를 억지로 태우더니 흰 바지에 흙탕물을 뒤집어 씌워?’ 점점 속이 부글부글 차오르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을 때쯤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그런데 아침만 해도 멀쩡하던 길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 사람들이 바지를 걷고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 본 광경에 놀라 햇볕가리개 너머 고개를 쑤욱 내밀었고, 운전수는 나를 돌아보며 이리저리 사람들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하는 듯했다.
그렇게 집으로 도착을 했고 지갑에서 10페소를 주섬주섬 꺼내자 운전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내가 당황하며 동전을 주려고 했지만, 끝까지 받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치더니 페달을 돌려 가는 것이었다. 멍하니 서있는 나를 향해 웃으며 뒤돌아 손을 흔들어주면서.
너무도 부끄러웠다. 나를 보고 쌩쌩 페달을 휘저어 반갑게 달려오던 모습부터, 동네의 길이 물바다가 되었다고 설명하던 모습(물론 내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짜증스러운 내 표정 모든 것이 지나가며 운전수가 끝까지 받지 않고 돌아간 10페소를 보았다.
10페소. 270원. 트라이시클 운전수들이 하루 종일 페달을 밟아 버는 돈은 얼마일까. 설령 그냥 준다고 해도 내게는 크지 않은 돈. 문득 힘차게 페달을 젓는 그들의 발을 볼 때면 ‘열심히 살아가는 그 어떤 모습’들을 느꼈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소로웠다. 그리고 그들을 친근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부끄러웠다. 적은 벌이지만 돈벌이로만 그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진심, 그것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걸.
그 날, 해 질 녘 나를 집 앞까지 내려주고 간 필리핀 바콜로드 트라이시클 운전수는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 흰 색 바지도 함께. 집으로 돌아와 다시는 입지 못할 얼룩이 된 흰색 바지를 보며 작게 웃음이 나왔다. 나를 위해 힘차게 씽씽 페달을 밟아준 그 발이 떠올라서. 그의 단순한 착함이 얼마나 온전하게 느껴지던지. ‘내 친구가 젖으면 안 되지.’하고 열심히 페달을 저어 날 태워다 준 게 다 일 테니까.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반바지이든, 긴바지든 은 전혀 생각지 않은 채. 설령 그것이 흰색 바지였더라도.
조금은 바보 같은 그 진심이 그립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살아가니까. 그 많은 것들은 그 들끼리 뒤섞여 처음의 진심도 감추어 버리게 한다. '이런 것을 해주면 좋아할 거야, 이 정도는 해줘야 센스 있어 보이지.' 그 계산은 얼마나 정확했을까. 처음부터 공식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공식 같은 것을 억지로 집어넣어 진심을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닐까. 조금 촌스러워도, 나 같아도. 그래서 별 볼 일 없어도 나이기에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생각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름조차 몰라 아직도 트라이시클 운전수,라고만 기억하는 나는 이제는 알고 있다. ‘묻을 준비’쯤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가장 소중한 진심을 전할 수 있고 또 전달받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지우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