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고양이, 듀이 리드모어 북스
그해 겨울 아이오와주에는 하얀색 솜털이 흩날렸다.
녹지 않는 눈은 봄에도 그다음 겨울에도 사람들의 옷깃에 내려앉았다.
책을 펼친 당신의 손끝에 그 보드라움이 닿는다면.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
도서관 고양이, 듀이 리드모어 북스
1988년 1월 18일, 미국 아이오와주 스펜서 도서관장 비키 마이런은 추운 겨울날 도서 반납함 안에서 작은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다. 그녀는 당장에 어린 생명체를 꺼내 품에 안았고, 곁에 있던 직원들이 서로의 손을 부딪치며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온기가 전해지고 웃음이 감돌았다. 도서관과 고양이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도서관장 비키는 이튿날부터 도서관의 모든 직원과 이사회, 스펜서 시장 그리고 동네 의사와 변호사를 차례로 찾아가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기르기 위한 허락과 조언을 구한다. 당시 스펜서 지역에는 딱히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기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었던 것과 (있더라도) 그런 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마을의 침체한 분위기, 그리고 도서관을 보다 친근하고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고자 했던 비키의 계획은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y Reaemore Books)'라는 근사한 이름을 만들어낸다. 십진분류법의 이름을 딴 고양이, 동화 같은 실화가 시작했다.
이 작은 고양이는 이름처럼 똑똑하게 자기 일을 해나갔는데, 도서관 정문에서 첫 손님을 기다리고 함께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해 성인용 논픽션 코너 같은 곳을 걷고서 외로운 어린이와 노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듀이로 인해 사람들은 웃었고 평소보다 오래 머물렀다. 기분 좋은 행복감은 집으로, 일터로, 지역으로 번져갔다.
‘1988년 겨울의 듀이는 스펜서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아이오와 스펜서 지역은 극심한 경제난에 처해있었다. 소규모 자영농이 대규모 기업농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농부와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었고 마을의 실업률이 치솟았다. 이에 도서관은 일자리 은행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신기술 책을 비치하고 이력서 코너를 제공했다. 그러나 경제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마을 전체에 깔린 우울함을 거두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온기가 필요했다. 웃음이 간절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오랜 구직 활동, 어떤 존재와 결별, 건강 문제를 비롯한 삶의 고단한 과정을 겪으며 필요했던 것은 온기다. 내가 겪는 '문제'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문제를 겪는 '나'를 위로해 줄 손길이 간절하지 않았던가.
듀이는 사람들의 품으로 뛰어들었고, 도서관의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만 나누었지만, 어느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주제는 듀이였다. 조금씩 더 많은 사람이 도서관을 찾아왔다. 사람을 따르고 서가를 거니는 이 영특한 고양이를 보기 위해 지역 신문 기자가 찾아왔다. 이후 미국 전역과 일본의 취재진까지 모여들며 도서관의 고양이가 아니라, 도서관의 고양이가 바꾸는 삶의 풍경이 전 세계로 방영이 되었다. 각국에서 수많은 편지와 선물을 보내며 위로해줘서, 웃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꼬박 19년을 도서관의 고양이로 지낸 듀이가 위 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자 워싱턴포스트, USA투데이 등 250여 개 매체에서 부고를 알렸다. 이후 발간된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는 2009년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등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됐으며, 25개국에 번역이 됐고, 한국에서도 같은 해 나와 지금까지 2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보낸 수천 통의 편지와 사연을 토대로 엮어낸 <정말 고마워 듀이>도 추가로 발간됐다.
그 해, 바닥이 없던 수렁에 빠진 마을에 위로를 건넸던 듀이를 떠올린다. 올해, 출구가 없는 터널에 갇힌 우리 마을에 듀이가 찾아온다면 달라질까. 서로 경계하는 눈빛을 풀고 굳게 닫은 입술을 뗄까. 다시 서로 인사를 건네며 두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서로의 품으로 온도가 오르다
"듀이는 특별하지 않죠. 다만 사람을 좋아했죠. 그뿐입니다." 비키는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듀이는 특별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능력을 자신의 자리에서 다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사람을 따르고 서가 사다리를 오르고 때로는 사진 촬영을 하거나 (화보용) 미소를 지어주는 것은 여느 고양이와 다르지 않다. 그녀는 평범한 능력이 특별해지는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듀이에게 배운 것이 있죠. 내가 있을 곳을 알고, 가진 것에 행복해하는 것.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며,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
내가 함으로써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이 있다. 머무는 곳마다 흔적을 남겨 도서관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린 녀석처럼, 나는 세상을 어떻게 채워갈 수 있을까.
도서관의 가장 좋은 점은 서로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책을 반납할 때 가장 좋았던 문장과 이유를 한 줄씩 적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행복할 분량은 늘어난다. 정말 그렇다. 언젠가 독서 모임을 진행하며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단어를 묻자 어떤 사람은 '그냥'을 꼽았다. 차마 표현하기 멋쩍은 것을 에둘러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된다면서. 다른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것을 떠올릴 힘이 된다고. 나머지 한 사람은 먼 나라의 단어를 말했다. 칼랑카, 멀리서 저주를 건다는 뜻. 이러한 단어가 있기에 실제의 폭력이 줄어들거나 더 큰 미움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단어 뒤에 숨겨놓은 수줍음, 어떤 순간에도 찾아내는 희망, 그리고 덜 미워하기 위한 구실의 미움. 저마다의 해석은 서로의 삶에 각주가 된다. 이러한 문장이 모여 도서관 책의 띠지가 된다면, 책을 빌리고 반납할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행복에 머무를 수 있을까. 문장의 스킨십은 세상의 온도를 높인다.
동행, 동시에 행복한 날
듀이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오래 머물렀고, 깊이 행복해했다. 인간과 동물이 동행하는 날, 어느 날 하루는 동행의 도서관으로 문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동물과 나누는 교감으로 정서, 인지, 사회, 신체적 기능을 조금씩 높일 수 있다는 연구는 지속해서 발표되고 있다. 조금 느려도 함께 즐거울 수 있다. 도서관 마당에서는 동물 간식을 만들고, 서가에는 동물을 배우고, 논하고, 상상하는 책을 큐레이션 한다면 그날 하루는 도서관 곳곳에서 크고 작은 탄성이 들려올 것이다.
역사 속 실화에서부터 오늘날 생생한 모습까지 동물 이야기를 큐레이션 한다면 그 곁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역사는 사람과 같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고양이>에도 나오지 않던가. 과학과 정치, 역사와 예술에 기여한 이야기와 영웅 훈장을 받거나 전화로 구조 요청을 한 고양이를 비롯해 에드거 앨런 포의 집사 시절까지. 어떤 역사는 더 매력적이다. 이와 함께 동물 정보나 동물권에 대한 전문서, 자료집을 배치한다면 알 법하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던 것에 대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는 간단한 행위와 눈을 마주치는 동작과 같이 지극히 평범하지만, 전혀 다른 의도를 전할 수 있는 것들처럼. 그 옆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동물 사진과 그림, 그리고 사사로운 일상을 적은 수필들이 걸려있다면 서로 같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일부지만 동물과 살아가는 사람은 전부다. 우리가 사는 지역과 거리에 동물이 있고 우리는 거의 매일 이들을 만난다. 동물의 의미가 생명과 공존이라면 우리는 아직 현명한 답을 찾는 중이다.
아직 도서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화공간은 동물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함께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Museum for All, Museum for Dogs)> 전시 시사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개를 작품의 소재가 아닌 관람의 주체로 기획한 것이다.
듀이는 다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다. 책가방 안으로 들어가고 상자 속으로 사라지며 서류를 날리고 털은 더 많이 흩날린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서로가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유일하며 그것이 곧 이유가 될 테니까. 다른 생명과 함께 살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물론 불편'하겠지만 그것 또한 아름다운 방법으로 극복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위대한 이야기가 그렇듯.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듯. 서로를 초대하고 만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역사는 시작될 수 있다.
경계심은 무너졌다.
보드라운 솜털에, 슬쩍 흔든 꼬리에,
가냘픈 속삭임에, 파고드는 몸짓에.
한 줌 텃밭, 세상의 전부
듀이가 조금 작은 생명체라면, 식물은 또 다른 듀이의 이름이다. 그들의 특성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지 않다. 우리가 돌봐야 하는 것,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것. 긴장을 낮추고 활력을 높이며, 서로를 건강히 살게 하는 것. 무엇보다 식물을 돌보면 이 햇살과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 그 미묘한 차이와 보이지 않는 거리를 느낄 때, 내가 닿을 수 있는 세상의 끝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꽃이 진 모습도 살기 위한 것임을 알 때, 마음속 그늘진 곳까지 사랑하게 될 것이다.
최근 많은 도서관에서 텃밭을 만들어 식물을 심고 채소를 수확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마당과 옥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줌 흙을 채울 수 있는 화분만 있다면 충분하다. 이 작은 곳이 식물에는 세계라는 것과 한 생명이 자라남으로써 또 다른 생명이 찾아오고 생겨나는 것을 본다면, 작은 존재의 놀라운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어렵다면 도서관에서 폐종이 씨앗과 같은 것을 나눠줘도 좋다. 폐지를 불러낸 공간에 씨앗을 심은 종이, 그곳에 적은 이야기를 길러내는 것만으로 의미가 생길 것이다. 작은 생명을 틔우기 위해 온 우주가 돕듯,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 나를 위한 생명의 화려한 노고를 느낄 때 오늘은 더 아름다워질 테니까.
편견 없이 모두에게, 특별하게 서로에게
도서관은 안전하고 친절하다는 것. 듀이의 역할을 문장으로 살려내는 방법도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눠보세요. 이곳은 도서관이잖아요.'와 같은 문구는 어떨까? 길지 않은 문장으로 내가 사는 공간과 함께 사는 타인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낮춰갈 수 있을 것이다. 가벼운 눈 맞춤, 부드러운 미소, 손바닥을 흔드는 인사, 그 무엇이든 서로의 생기를 흐르게 하길 바라며.
2018년 미국 ABC 뉴스 등 외신들은 텍사스주의 한 유치원의 아침 인사를 다뤘다. 이는 교사 타일러가 1년간 시행해 온 것으로, 그날의 아침 당번이 교실 입구에서 친구들과 '좋은 아침이야.' 말하며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기도 한다. 타일러는 인사를 하게 한 이후 아이들이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존중을 하게 됐으며 나아가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서로 인사를 건넨다면,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말해준다면. 누군가가 나를 환영하고 응원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 기분 좋은 행복감이 잔잔히 단단히 일상에 스며들 것이다. 그해,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던 듀이의 털보다 더 멀리 퍼질지도 모른다.
듀이의 동의어가 고양이가 아니라면,
관심 애정 대화 헌신이라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넣어두어야 할까.
고양이가 아니라 듀이였다. 그는 편견이 없었고 경계를 허물며 애정을 전했다.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내 안의 사랑도 꺼낼 수 있다면 우리도 만날 수 있을까. 반납함에서 꺼내 올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칼럼은 월간 국회도서관 9월호에 기고했어요. 가끔 생각하죠. "고양이와 살고싶어!" 라는 말을 듣거나 저 또한 하게 될 때, '그런 애정'을 나누고 싶은건 아닐까하고.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교감을 하고 장난을 치며 조금씩 조금씩, 친해지고 싶은 그런 세상. 그리고 고민하죠.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수 있는 것에 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