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내려놓으면, 결과는 종종 친절해진다.
케이크가 푸딩이 된 날
할머니는 손녀의 생일 케이크를 굽는 날이면 유난히 조심스러워졌다.
밀가루를 체에 거를 때도, 달걀을 깰 때도,
마치 작은 실험을 시작하는 과학자처럼 손놀림이 신중해졌다.
오늘만큼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븐은 늘 인간의 계획에 무심하다.
할머니는 온도를 조금 높게 맞췄고,
그 ‘조금’은 케이크에게는 꽤 큰 사건이었다.
오븐 문을 여는 순간, 할머니는 바로 알아챘다.
케이크의 중심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고,
표면은 그럴듯했지만 속은 축축하게 무너져 있었다.
스펀지는 공기를 잃은 풍선처럼 힘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실패잖아.”
손녀가 먼저 말했다.
실패라는 단어는 요즘 아이들도 참 빨리 배운다.
시험에서, 게임에서, 어른들의 한숨 속에서.
할머니는 케이크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마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 연구자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한 게 아니야.”
“케이크를 만들려다 푸딩이 된 거지.”
손녀는 눈을 크게 떴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잘라 작은 접시에 나누어 담았다.
무너진 중심부를 숟가락으로 떠보며 말했다.
“보렴. 케이크는 보통 이렇게 부드럽지 않잖니.”
그 위에 생크림을 얹고, 딸기를 하나씩 올렸다.
케이크가 아니라 새로운 디저트를 조립하는 사람처럼,
할머니의 손길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날의 디저트는
케이크도 아니고 푸딩도 아니었다.
하지만 손녀는 한 숟갈 먹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어.”
할머니는 그 말을 마음속 연구 노트에 적어두었다.
관찰 결과: 이름을 내려놓으면, 결과는 종종 친절해진다.
촛불은 여전히 켜졌고,
노래도 불렀고,
생일은 조금도 망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그날의 디저트를 오래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접시를 치우며 손녀에게 말했다.
“실패는 말이야,
원래 계획보다 나은 걸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란다.
우리가 실패라고 부르는 건,
사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결과일 때가 많아.”
그날 이후 손녀는 무언가가 잘 안 될 때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다른 디저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실패라고 부른 것 중,
푸딩으로 부르고 싶은 것은?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남은 장면은 언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