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를 그리는 일

행복의 끄트머리를 발견하고, 눌러붙은 자국도 발견하는 일

by 유앤나


행복이 뭘까? 완전한 답을 찾는 것 보다

행복엔 이런게 있지, 하며 사례를 하나씩 늘려가고 싶어.


그러니까,

서울이 뭐냐고 물으면 한국의 수도라고 할 수 있지만

정말로 틀림없는 한 줄 정답이겠지만


서울을 장소로, 위치로, 몇 가지 숫자로,

풍경으로, 지역으로,

의미로 무한히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 이자 최대 도시이다.


서울을 분명하고 변치 않을 한 줄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가 매일 살고 부딪치고 움직이는 서울이 어떤 곳인지는 그 한 줄이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서울을 오려는 외국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주 멀리서 서울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오히려 '서울은 한국의 수도입니다' 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어쩌면 서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만 알고 싶고, 여기까지 알아도 충분한 사람들.


그런것처럼 행복이란 뭘까 - 한 줄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행복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나아가 행복한 삶에 대해서 말이다.


서울의 뉴스를, 일상적인 풍경을, 지역의 소식을, 나고 자란 사람들의 사연을, 오래 여행한 사람들이 자주찾는, 막연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서울이 되는 것처럼, 행복도 그렇게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행복이라 불리는 것들을, 행복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동의하는 것과 또 그렇지 않은 면들을, 내가 갖고 있는 행복의 면면들을 하나씩 알아가려고 할 때. 행복해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을 한 줄씩 알아가고 하나씩 이해해 가면, 그래도 행복의 끄트머리를 발견하고, 눌러붙은 자국도 발견하고, 가려졌던 그림자도 발견하며 이런 게 행복이구나,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겨울엔 겨울의 따스함이 있다. 겨울이라서 느끼는 아늑함도 있고, 겨울이기에 나타나는 포근함도 있다. 겨울을 추운 계절로만 부르기에 아까운 것들이 있는 것처럼, 행복을 '좋은 것'이라는 한 줄로 정의하기에 아까운 것들이 있다.


오늘 아침,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는 것. 따뜻한 밥을 먹었다는 것.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것. 답장이 왔다는 것. 창밖으로 햇살이 들었다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는 것. 이불이 포근했다는 것. 이것들은 행복일까? 정의에 따르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의 지도를 그리는 일에는 분명 포함된다.


행복의 지도를 그리고 싶다. 완벽한 정의를 찾는 대신,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씩 표시해 가고 싶다. 여기에도 있었네, 저기에도 있었네, 이런 모습도 있었네. 그렇게 점을 찍다 보면 언젠가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행복의 전체 모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행복의 지형은 보이지 않을까.



20251220_173820.jpg @2025. 12.20 겨울 광화문


그래서 무탈하자는 말 대신
행복하자는 말 대신



연말,

무탈하길 바란다는 말을 많이 한다.


부디 행복해지지 않아도 좋으니, 별일만 없기를 바란다고.

마치 작은 소원처럼 말하지만,

이것만은 이뤄달라고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무탈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별수 없이 삶은 흔들린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하길 바란다는 그 평범한 바람.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주변 사람, 그 주변과 주변,

그렇게 계속 이어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정말로 다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질환은 그 가족과 또 연결된 이들이 겪는 고통이고,

먼 곳에서 일어난 재난은 결국 우리 모두가 숨 쉬는 이 세계의 상처다.

무고한 한 사람의 죽음은 전 인류의 죽음과 같다는 말처럼,

모든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애석하게도 무탈할 수 없다.

늘 예상하지 못한 문제와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기억하려고 애써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문제고, 소중한 건 소중한 거고,

행복은 또 행복이고, 의미는 의미라는 것을.

어느 하나가 생겼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 삶이 흔들릴 때에도, 그때에도.

아, 그래 삶에는 이런 소중한 게 있지. 이런 행복도 있지.


무탈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문제는 생길 것이고, 삶은 흔들릴 것이며,

우리가 연결된 이 세계의 아픔은 우리를 아프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는 것이라는 것을.

문제와 행복이, 고통과 사랑이,

슬픔과 의미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삶이고, 별수 없이 삶이고, 살아갈 이유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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