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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Apr 27. 2016

당신,  지금 시간이 있나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나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 네가, 만난 순간.

3초가 지날 무렵, 버튼을 눌렀다.


타이머를 보고 있으면 조급해진다.


'5분 글쓰기'를 해 보기로 하고 타이머를 켰다.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른 숫자가 3초를 지나 칠 때 황급히 정지를 눌렀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누르자마자 바로 시작해야지.' 마치 달리기 전 준비자세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을 눌렀다. 그리고는 빠르게 휘갈기며 써재꼈다. 써야 할 주제가 명확하지도, 분량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시간이 없어


영어, 면접질문, 인적성과 전공과목 준비까지. 입사를 위해 준비해야 했던, 아니 하나의 길을 정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봐야 했던.


대학교 4학년 봄, 한 학기를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갔다. 3개월이 지날 때쯤 영어도, 그곳의 문화도 익숙해졌다. 더 이상 영어가 어떤 목표가 아니라 언어로써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한국에 있는 동기들은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난 어쩌지,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뒤쳐질 거야.'


동기들이 하나둘씩 입사 원서를 쓴다는 말에 흔들렸다. '여기에서 영어성적을 조금 더 올리는 건 크게 의미가 없어. 내년이면 한 살 더 먹을 테고, 그럼 점점 늦어질 거야.' 결국 조급함을 누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확한 직무도 파악하지 못한 채로 마구잡이로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게 맞는 것 인 줄만 알았다.


내 행동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남보다 늦지는 않았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6개월 혹은 1년이 늦을까 봐 그렇게 남의 속도에 맞추고 나니, 남는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어디지?’하는 혼란스러움이었다. 그때 내가 나를 올바르게 돌아봐 주었다면, 나의 속도가 있고 남의 속도가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자, 하고 생각했더라면.


아직도 그때를 떠올린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조금 더 느긋하게 생각했더라면, 하고 나는 또 하나의 오해를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다. 내가 탈 기차가 언제 올지는 나만 알 수 있다고.


지난주,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몇 년 전에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현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계속되는 시험 준비로 마음이 지친 그녀는 올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 경험을 들려주며,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결코 조급해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내가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 주변을 둘러보니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거야. 그래서 생각했지. 어차피 몇 년씩 하는구나. 그리고는 엄청 마음이 느긋해졌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할걸- 하는 후회가 들어."


아, 그때 나는 깨달았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게 잘못된 것이 아을.

중요한 것은 그 후에 행동이라는 것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한국으로 돌아와 입사 준비를 치밀계획해서 야무지게 진행했으면 됐을 것이다.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속도에 맞게 꾸준히 진전을 했으면 됐을 거다. 늦지 않았으니, 공부와 함께 그 당시 경험하면 좋을 것들을 곁들이면서.


지금 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그리고 이 시간은 빠른 것인가 혹은 늦은 것인가.


시간이, 있는가?


시간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시간이 있네, 없네 하는 나만 있을 뿐.

'이걸 하기엔 이만큼이 필요해' 분배하며 계산하고, 빼버리며 시간을 한정 짓는 나만.


입사를 지원해야 하는 완벽한 시기도,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적당한 기간도,

내 마음속 초조하거나 혹은

느긋한 마음에서 나온 계산일 뿐임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던 네가, 만났던 순간.


내가 그 동안 놓친 것들은 얼마나 될까. 지나지 않았다고, 멀리 오지 않았다고 지금 생각해도 될까.



타이머를 켠다.

매일 보는 휴대폰 시계, 흔하게 걸린 벽시계는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지만

'어, 잠깐!' 할 새도 없이 빠르게 나를 지나치는 타이머는,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왜일까. 내가 미루고 있던 것들에 대한 중압감이 느껴져서가 아닐까. 하기로 하고 하고 있지 않은 것들이, '나중에' 하며 꾸역꾸역 밀어두었던 의무감이 터져 나와서.


빠르게 아니, 본연의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도 당당해지고 싶다.

휘갈기듯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의연함을 가지고 싶다.


있지도, 없지도 않다

어제와 같이 지금처럼 흘러갈 뿐이다.

타이머를 끄면,

마치 시간이 멈춰진다고 믿는 나를 지나쳐

시간은 가고 있다.

오늘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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