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앤나 Sep 18. 2016

"서점인가요?" "네"

내가 먼저 말을 건네야 하는 곳, 동네 책방.

"네."

"책방이곶 인가요?"

"네."

"오늘도 영업을 하시나요?"

"네."

"아홉 시까지 하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네."



네, 다섯 마디로 이루어진 대화라니.

불친절한건가 아닌가를 헷갈려하며, 

그렇게 나는 먼저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야 하는 서점 


들어오는 문이 없는 책방이곶, 지하1층에 위치한 이 곳은 저기 저 계단이 '문' 이다.



대개 서점에 들어서면 수다쟁이 친구들을 만나는 기분이다. 아주 자세히는 몰라도 꽤 익숙한 사이라고 해야 할까. 이 맘 때쯤 많이 보는 트렌디한 문구들, 신문기사에서 읽은 소개글이나 어느 블로그의 리뷰에서 넘겨보았던 내용들. 대개 그들은 먼저 내게 말을 건네는 편이다.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내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고, 걷는 동선에 따라 순서대로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게다가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아주 쉽게,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사갔다는 베스트셀러부터 이번 주에 막 나왔다는 신간, 무려 다른 나라의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거나 저명인사가 직접 추천하는, 혹은 계절과 이슈를 적절히 고려해 MD가 고른 책들같이 화려한 타이틀을 하나씩 붙이고 있는 수다스러운 책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 보면, 읽고 싶은 책 한 권쯤 골라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독립서점은 다르다. 그 작은 책방에 들어갈 때면 약간 설레고 익숙치 않은 긴장감마저 감돈다. 어떤 책들이 있을까? 예상할 수 없기에 상상으로 첫 만남을 그려보며 책방 문을 연다. 독립서점 안의 책들은 대개 새침하고 얌전하게 놓여있다. 어쩐지 말을 걸고 싶은 그들의 자태를 둘러보다가 슬쩍 들춰보는 것은 온전한 내 몫이다. 거의 다 처음 만나는 책이기에 표지만 슬쩍 봐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독립서점에서는 저 쪽 높은 선반에 얹힌, 이 쪽 낮은 바닥에 놓인 책 한 권과 시선을 직접 마주치며 펼쳐보아야 한다.


구어체도 섞여있다. 인생 얼마쯤 살아본, 혹은 오랜 집필 경험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세련된 솜씨가 아니다. 더러 제멋대로인 문장도 있고, 투박하리만치 촌스러운 표현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꾸밈이 없다는 것은 때로는 반갑다. 포장지가 없어 벗겨낼 기회조차 주지 않는 상대는 참 오랜만이니까. 그래서 나도 민낯의 내가 될 수 있다. 이런 책쯤은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어느 누가 추천했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읽었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야기가, 이 작가를 만나고 싶어서 사는 책. 





가볍게 다가왔다가 집어 든 무게보다 더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 책을 골랐다. 실실 웃으며 작가를 놀리게 되는데, 그는 전혀 거기에 굴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두 마디씩 툭 내뱉는 소리는 내가 잊고 있던 기억까지 끌어올린다. '어, 이거 감추고 싶었는데.' 하는 생각도 함께. 나처럼 속으로만 찌질한 사람이 아니라, 겉으로'도' 찌질한 작가의 책을 고르니 나에게도 솔직해진 기분. '사실은 나, 이런 거에 동질감 느껴.' '솔직히 나, 얘랑 비슷하게 별 볼 일 없는 거 같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왜 명랑해지기까지 하는 걸까.


서점에서 살 때 찍어주는 도장은 온라인으로 구매했는지 오프라인으로 샀었는지만 구별하게 하는 마크 정도의 의미였다. 그런데 책방 주인이 도장을 쾅 찍어주는 순간, 내가 이 책을 사고 있는 '지금'이 기억 속에 같이 쾅- 박히는 것만 같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야 하는 책방


어쩌면 혼자 머무를 수도 있는 서점,

그러다 누군가 들어오면 '어쩐지 나와 비슷할 것 같아!' 애정 어린 편견을 갖게 되는 곳,

포장하지 않은 너를 만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나도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장소,

조용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

밖으로 나와도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동네 책방, 독립 서점.



책방이곶에서 찌질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샀다. 이게 바로 책방이곶의 도장.



가을밤 한 번쯤 들려보는 것은 어떨까.

걷기 좋은 이런 날, 

기분 좋은 바람이 감도는 이런 밤.

아, 물론 혼자서. 

그곳에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새침한 친구들이 꽤나 많이 있으니까.





*독립서점 : 큰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서점 주인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운영한다고 해서 독립 서점이라고 불립니다.

*책방이곶 : '곶'은 영어로는 바다로 튀어나온 육지의 끝(Cape), 제주도 방언으론 ‘숲’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베스트셀러의 가장 끝에 있는 언저리 책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해요.

-위치 : 성동구 송정동 660262 지하 1층 

-시간 : 오후 1시~오후 9시

-전화 : 070-4610-3113 "네"라고만 대답해도 놀라지 마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4월 둘째 주 토요일에 만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