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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Sep 21. 2016

그들의 바람을 타고 하늘로 떠오르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그들이 가장 떠나고 싶어 하는 곳.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 졌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어떤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싶으세요?




".... 파리요."

잠시 생각한 그녀는 대답했다.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프랑스가 아닌 파리, 그녀에게 그곳은 어떤 의미일까.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넉넉하게 남았다. 혼자니까, 넉넉하게 준비한 시간은 고스란히 혼자인 내 곁에 남았다. 출입문이 없는 공항의 카페로 들어가, 안과 바깥 모든 풍경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어디가를 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공항에서 머무는, 이 곳에서 일을 하는 그들은 어느 나라로 떠나고 싶을까 알고 싶었다.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그래서 망설임 없이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매일 바라보는 그들이 가고 싶은 곳.


물품을 정리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공항에서 일을 하시면서, 혹시 가장 가고 싶은 나라는 어디세요-?" 조금 놀란 듯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 잠시 후 '파리'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술 너머 꿈같은 파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파리, 프랑스가 아닌 파리.



                                                                                                                                               2015. 09. Paris



언젠가 친구는 정말 간절하게 말했다.

"난 콜로세움을 꼭 보고 싶어 꼭!" 나는 되물었다. "콜로세움? 아, 판테온이나 신전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이 보고 싶구나?"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콜로세움. 다른 것은 뭐 보면 좋겠지만 콜로세움은 정말......"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보며 알 것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으니까.   

'이 곳에 꼭 꼭 정말 가고 싶어!!'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 곳. 유독 멀게 느껴져서 내가 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언제까지나 닿지 못할 장소로 환상의 공간으로 남겨두고프다는 생각마저 드는 곳.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가 있지 않을까. 정말 닿고 싶기도 하면서, 가슴에 남겨두고 싶기도 한, 그런 로망.


간절하게 원하면서도 왠지 꿈으로 남겨두고픈.

가고 싶은 어떤 이유를 대도 부족하지만

결국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는, '가고 싶은 곳.'



여행은, 로망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러 갈까, 누구를 기다릴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까. -2016. 08. 26 뉴욕으로 떠나는 중.






"스웨덴이요. 아름답잖아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공항카트를 타고 바닥을 청소중이던, 밝고 명쾌한 그녀는 '정말 아름다우니까요!'라고 말하며 덧붙인다. 가본 적은 없지만, 가장 가고 싶은 곳이라는 말과 함께.


아름다우니까.

바닷물에 일렁이는 노을이, 맑은 호수에 떠오른 구름이, 오후 네시의 하늘이, 수줍은 듯 그래서 함께 피어난 코스모스들이, 문득 떠오른 노랫말이, 오늘 너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생각해보면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걷고 기차를 타고

때로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던가.

오직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여행은, 아름다움


                                                                                                                   2015. 09 Swizerland, Maienfeld

'스위스는 어디나 하이디마을이야!' 하이디마을에 가고 싶다는 내게 주위 사람들은 말했지만, 하이디가 살아서 내게 아름다운 것이기에 꼭 마이엔펠트가 가고 싶었다.





"이 카페에서 여기가 제일 좋은 장소인 것 같아."

"그게 바로 내가 여기 앉은 이유인걸."

우리는 같이 웃었다. 카페에서 앉을 곳이 있나 둘러보다가 '저기다!' 눈에 들어온 곳, 이렇게 넓은 하늘이 옆에 있는 곳. 떠오르는 비행기가 가장 잘 보이는 곳.

귀여운 장난꾸러기 덕분에 "Don't do that"을 쉴 새 없이 외치는 그녀에게 물었다.

"뉴욕에 가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쇼핑이지! 핸드백을 사고 싶어!"

그녀의 가방을 쳐다보니 아기용품으로 가득 찬 에코백.

웃음이 나왔다. 그녀에게 핸드백은 엄마가 아닌 여자일까. 혹은 자유로움일까.

"핸드백은 언제나 위시리스트야!"라고 대답하며, 내가 뉴욕에서 사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에 빠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날 웃게 하는 것이 될 거야.

그녀처럼.



여행은, 나를 웃게 하는 것




“불편하고 낯선 잠자리, 점쟁이가 된 심정으로 메뉴판을 찍어 나온 해괴한 요리, 이국의 언어와 알 수 없는 거리, 세포 하나하나까지 긴장하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 젠장, 괜히 떠났어하고 후회해도 코끝에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궁둥이가 씰룩거리기 시작한다. 마법에 홀려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모든 순간은, 내게 마법이다.”  <어떤 날> 중 ‘여행, 그것은 마법의 순간’, 최상희


여행의 모든, 마법 같은 순간을 위해.





"새벽까지 편하게 소주 마시고 늦게 일어나고 싶죠. 그게 휴가거든."

공항에서 일을 한 지 7년째라고 하셨다. "오래되셨네요!" 하는 내 말이 손사래를 치며, 인천공항이 생길 때 처음부터 같이 일해온 사람들이 많아 자신은 중간급이란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화장실에서도 손으로 뒤처리를 하는 사람, 페트병에 물을 받아 해결하는 사람 등 하루에도 몇 번이나 화장실은 물바다가 된다고 한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제는 금세 처리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다름에 대한 포기보단, 다름에 대한 이해를 보았다면 젓는 고갯짓 속의 인심 좋은 표정 때문일까. 마침 내일이 휴가라며 집에서 소주 한잔 마시고 내일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고 싶다는 그. 올 해는 오후조로 일을 하기에 아침 출근을 늦은 편이지만, 늘 부담감에 잠을 일찍 깬다는 그가, 내일은 늦게까지 자겠구나- 나도 같이 즐거워졌다. 술이 참, 달겠다.


그래, 여행지에서 내가 그리워할 것은 아마도 떠나 온 곳.

그곳에서 떠나왔고, 다시 돌아갈 것임을 알면서도 그리운 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거기 있어서다. 장소는 상관없다. 그곳이 그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를 감싸 줄 곳이, 내가 편안히 쉴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네가 있다는 안도감마저 느낄 수 있는.


여행은

집을 그리워하는

여정


여행은, 집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욕, 파리, 취리히에서 머문 '집'



아마도 여행은, 로망.

가슴에 품은 꿈을 만나러 가는 길.

그래서 여행은, 아름다움.

돌아가고 늦을지언정, 그것마저도.

매 순간 여행은, 나를 위한 선물.

끝내는 나를 웃게 할 기억들.

결국에 여행은, 그리움

그리워할 집이 하나 느는 것.





우리가 '오늘'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날

지나온 어제를 그리워하듯.

때로는 바라는 내일을 꿈꾸듯.


삶과 닮은 여행에서,

나를 위한 선물을 발견하기를.

가슴속에 작은 로망 하나는 품고 살기를.

언젠가, 닿을 순간을 상상하면서.



인천공항에서 만난 그들의 바람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창가옆 테이블에서 만난 장난꾸러기 아들을 둔 그녀, 아름다운 스웨덴에 가고싶다는 그녀, 집에서 늦잠을 자고 싶다는 그, 언젠가 파리에 닿고 싶다는 그녀.


그들의 바람을 타고, 뉴욕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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