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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Sep 22. 2016

내 하루가 말했다. "여행 하자"

오늘 나는 여행하기로 했고, 내 하루의 여행도 허락했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브루클린 지역에서 일요일 아침에 열리는 플리마켓을 위해 너무 일찍 맨해튼 숙소에서 떠나온 게 잘못일까. 플리마켓은 아직 준비 중이다. 근처에서 뭐라도 먹고 올까 싶어서 들린, 한국에서부터 가보고 싶었던 브런치 가게도 영업시간 전이다. 다른 장소에 갈까 알아보니, 주말이라 지하철 운행이 지연된다고 한다.


닫힌 문, 정지한 회전목마. 갈 곳을 잃었고 그제야 갈 곳을 찾았다.


“관점은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변화한다. 길이 아주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아주 단호하게 방향을 틀거나 급경사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보게 된다.”  <산 위에 가서 말하라>, 제임스 볼드윈






뭘 해야 하지.

오전에 하려고 했던 일정들은 모두 틀어졌다. 서둘러 스마트폰 구글맵을 켜며, 지금 이 곳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들을 확인했다. 정해진 여행기간 동안 효율적으로 이동하기 위해 미리 입력해놓았던 동선. 이리저리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옮겨가며 보다가, 문득 내 손가락을 보았다. 재촉하는 나를, 닦달하는 나를. '빨리 확인해야지.' 비어있는 시간을 참지 못하는 나를, 자칫하다간 오늘 하루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압박을 주는 나를.

그래, 여행이란 이런 게 아니라고. 그래서 애초부터 이동시간도 넉넉하게 계획했다. 당일에 따라 동선도 바뀔 테니까 그 순간을 즐겨야지 마음도 먹었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자꾸 초조해졌다.


'오늘 이스트 빌리지가
더 가고 싶긴 하지만,
동선에 따라 셋째 날 들리면 좋겠지?'


한국에서 여행 일정을 짤 때. 계획표에는 많은 것이 있었지만, 너무도 많은 것들이 없었다.



난,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동선이 불편해도, 지금 가기에는 멀어도, 오늘 하지 않으면 비효율적인, 그런 것 따위가 여행까. 내 하루도 여행하게 두면 어떨까. 생각해보면 나는 틀을 만들고 나를 가두는데 특화되어있다.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좀 안 본 대로 하면 안 될까.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어하는데, 나 한번 믿어보면 안 될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만든 계획은,

여행 중인 내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음을.


적어도 그 일정표에는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그녀와의 대화,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뉴욕에서 가보고 싶은 장소를 함께 보는 순간,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시간, 쿠키가게에 길게 늘어선 줄에 나도 괜히 끼어본다거나, 누군가의 앞마당에서 열린 작은 시장을 우연히 만나는, 문득 지나치다가 앉아보고 싶은 공원을 발견하게 될 기회는 적혀있지 않으니까.





나의 계획표에 '머무르기' 가 있는지, 혹시 '방문하기'만 가득하지는 않은지.

여행지에서조차,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나의 하루도 여행을 하게 두기를.

그들도 하고 싶은 게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의 하루는 너의 하루와 만나 전혀 새로운 날이 될 테니까.




오늘, 나는 여행하기로 했고

내 하루도 여행하기로 했다.



플리마켓이 문을 닫아 천천히 거닐다가 만난 맨하탄브릿지. 와, 브루클린브릿지만 내 리스트에 있었는데, 이 곳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음을.





버려진 철로를 공중 정원으로 만든
이름마저 예쁜 하이라인파크(High Line Park)에서
사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어떤 여인이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한
벤치였으니까.



여행 중에, 여행을 하다.

그것은 곧 새로운 일정이 되고

완전히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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