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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바보같은 내가 되는 시간

사실 너, 하나도 안 괜찮지? 그래서 괜찮은 날.

by 유앤나

혼자 여행을 하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

_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유니온스퀘어, 홀푸드마켓.




혼자 여행을 하면 좋은 점

밥 대신 디저트를 두 번 먹을 수 있다.

어제저녁에 들린 시장에 오늘 아침 다시 갈 수 있다.

지하철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볼 수도 있다.

사실, 잘못 내린 거지만 불평을 들을 일이 없다.



왠지 제철과일이 먹고 싶은 날도 있다니까, 맛집 대신.


플리마켓보다 아기가 더 보고싶은 순간도 있고


예정엔 없지만, 이렇게 길게 늘어선 줄엔 나도 괜히 서보고 싶었어. 브루클린의 쿠키가게.



벌써, 지쳐 카페를 찾아도 된다.

사실, 별로 내키지 않는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

으레, 먹는다는 유명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비가 오는 날엔 카페에 앉아 멍을 때려도 되고

햇살이 쨍한 날엔 예정에 없이 공원으로 가도된다.

문득 그리워지는 날엔 엽서를 잔뜩 사서

어느 곳, 오래도록 앉아 편지를 쓸 수도 있다.



햇살이 잘드는 창가자리엔, 나 혼자라도 괜찮았다.



뒤를 졸졸 따라오는 강아지를 한참 쓰다듬어 줄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한바탕 벌어지고 있는 체스경기를 구경할 수도 있다.

유치원 마당에서 열리는 생일파티에 슬쩍 끼어본다거나

해가 저기 건물 너머로 져가는 모습을 기다릴 수도 있다.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그리움

대책 없이 다가오는 외로움

그래서 무방비상태로 네가 떠오르고

원 없이, 한없이 널 그리워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맥주 한 캔 혹은 라떼를 마시며

아주 먼 곳, 너는 상상도 못 할 곳에서

너를 오래오래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있지,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외로워지더라. 왜일까, 그건 아마도 그리워서.




이것이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적당히 어른인척,

이런 경험쯤이야,

인생 좀 살아본 듯,

노련한 척 해왔던,



나를 한 방 먹일 수 있어서



'사실 너, 하나도 안 괜찮지?' 말해줄 수 있어서.

여전히, 너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조금만 걸어도 쉴 곳을 찾고

낯선 이의 친절에 쉽게 경계를 풀고

퉁명스러운 말에는 하루 종일 축 쳐지는


너무 쉽게 외로워하고

또 금세 힘을 내는,

그렇게 하나도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이지.


그래도 괜찮아.

바라봐줄 수 있고, 다독여줄 수 있어서.



센트럴파크, 뉴욕.





혼자 여행을 하면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적당한 수준의 나로 살아가는지.

내가 생각했을 때 적당한, 나로.

상식적으로, 평균적으로, 적당히.


길에서 만난 컵케이크 가게에서

예쁜 컵케이크를 사서 한 입 베어 물고

가던 길을 가는데,

'우와! 진짜 맛있다. 아, 하나 더 살걸.'

하면서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냥 지나칠수 없었던, 컵케이크 단 돈 1달러의 행복.
사랑스러운 원바이트- 컵케이크. 처음엔 핑크색을 골랐고 그 다음엔.



내가 민망한 건 누구 때문일까.

'어, 쟤 또 왔네?'라고 생각할 가게 주인?

아니면 가던 길을 돌아 다시 가야 하는 나.


이런 고민을 하는 '나'를 만날 수 있는,

혼자 여행.



그리고 그 다음엔 초록색의 톡톡 튀는 색을.



이럴 땐,

다시 돌아가서 하나 더 사면됩니다.

아까보다 더 맛있어 보이거나, 예쁜 색으로.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고구마를 사도 괜찮고


디저트만 계속 먹어도 괜찮습니다, 나만- 괜찮다면.


그래서, 오늘도 혼자지만 걸어볼까. 여기는 뉴욕이고 난 오늘 나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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