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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Oct 19. 2016

오늘 저녁, 콩나물국 어때요?

뜨거운 밥을 크게 한 술 떠서 맑은 국물에 말아먹어야지

자전거 바구니에는 어떤 과일이 담길까?  



저녁 일곱 시 반, 동네 과일 가게

퇴근길 동네 과일가게에 들렸다. 과일과 채소가 있고 두부 같은 '저녁거리'를 사기에 안성맞춤인 가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 멈추고서 과일을 구경하는 아주머니, 두부를 사고 있는 젊은 새댁, 사과대추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꼬마. 그리고 퇴근길, 어떤 과일이 맛있을까 둘러보는 나. 다들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벌써 귤이 나왔다. 아직 10월, 사기에는 조금 이른가? 귤껍질을 벗겨낼때부터 시그러움이 튈지도 몰라. 다른 과일들을 살펴보니 이번에는 참외가 바구니에 담겨있다. 여름과일이 아니던가? 가을 저녁, 귤과 참외 가운데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있었다면 지금 무슨 과일을 사면 좋을지 알려줬을 거야.


푸릇푸릇한 귤, 아직 덜 일었구나?


'새콤하지 않아요! 달아요'라고 써진 글씨를 믿어보기로 하고 귤 한 바구니와 샐러드에 넣을 파프리카 한 봉지를 샀다. 계산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 뒤에 서서 무심코 계산대 위를 바라보았다. 검은 봉지 위로 수북하게 올라온 콩나물.


와, 좋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좋겠다! 오늘 저녁은 콩나물국인가 봐.


과일이 담긴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가게를 나섰다. '콩나물 한 봉지에 와 좋겠다라니, 콩나물국이 먹고 싶었나.' 생각하면서. 과일가게 입구에 3살쯤 된 아기가 조그마한 손으로 사과를 가리킨다. "이거 뭐야?" 엄마는 못 들었는지 허리를 굽혀 과일을 고르는 중이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든다. "이거 뭐야아" "이거, 미니사과야. 사과가 조그맣게 나온 거야. 먹고 싶어?" "응!"





아까 모녀는 조그마한 사과를 샀겠지. 아이손에 들린 작은 장바구니에 담고 집으로 갈 것이다. 귀여운 꼬마는 미니 사과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집의 식탁 위에는 노랗고 따스한 콩나물국이 올려질 것이다. 저녁밥을 먹기 위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 국물을 뜰 것이다. 늘 그랬듯 익숙하게.






집 밥이 먹고 싶었던 거다.

껍질만 까면 당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귤이나 듬성듬성 썰어내서 먹는 파프리카 말고.


뿌리를 다듬고

대가리 껍질을 벗겨

멸치를 우려낸 물에 포옥 삶아내야 하는,

그런 콩나물국이 올려진 집밥이.


언제부턴가 가장 먹기 어려워진 밥이 그리웠던 거다. 반찬 가짓수 넘쳐나는 명절 밥상이 아닌, 이따금 집에 갈 때면 차려주는 푸짐한 밥상이 아닌. 필요한 찬거리를 사 와서 몇 가지 밑반찬과 함께 당연한 듯 단출하게 차려주는 밥상이.


그리울 일만 남아있음을 알기에


일 년에 몇 번이나 먹을까.

지금도 먹기가 어려운, 집밥.

앞으로는 평생 먹지 못할, 집밥.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집에 가서 콩나물국을 먹어야겠다.

콩나물을 다듬는 엄마 옆에서 조잘대면서

국자로 수북하게 떠올려지는 콩나물을 보고

"너무 많아- 조금만 줘" 배부른 투정도 부리며

뜨거운 밥을 한 술 크게 떠 국물에 말아먹어야지.

어제도 먹었던 김치와 지겨울법한 콩자반도 같이.

그리고 늘 하는 말도 해야지. "엄마, 김은?"


저녁밥을 먹고는 과일가게에 가야겠다.

꼼꼼하게 제 철 과일을 살피는 엄마 옆에서, 철없이 물어봐야지.


"엄마,
귤이랑 참외 중에
어떤 게 더 맛있을 거 같아?"



그때쯤이면, 샛노란 귤로 익어있을까. 달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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