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천장, 그래서 바라본 것들.
찬란한 빛이 눈을 감게 하고
따뜻한 온기는 몸을 감싼다.
천장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하늘이 천장이 된 곳이었다.
볼 것이 없는 도시가 아니었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볼 것이 가득해,
볼거리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낯선 곳에 가고 싶었다.
그 낯선 곳이 볼 것이 없는 곳이기를 바랐다.
유명한 볼거리가 없는 도시.
그렇다고 자연 풍광이 대단하여
바라만 봐도 넋을 놓게 되는 곳이라거나
유명한 영화에 나왔던 장소도 없으며
내로라하는 유적지 조차 없는 곳.
볼 거 없는, 도시에서는
만나는 것들마다 '볼 것' 이 될 테고
그 날의 마주침은 단 하나의 인연이 될 테니까,
거쳐 가는 도시,
3일이면 충분하다는 도시.
리스본에서 꼬박 12일을 머무를 예정이었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사는 옆 집 아이의 이름을 알아가고
아침에 잠이 덜 깬 채로 인사를 나누게 될
작은 카페의 주인이 언제부터 커피를 내려왔는지.
뜨거움이 물러나는 오후 즈음,
강변에 걸터앉아 낚시를 하는 할아버지는
이십여 년 전쯤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리스본이, 궁금했다.
그리고 정말로 당신들이 만나고 싶었다.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며, 나를 만들어 준 것들이 있다.
인생의 역작으로 꼽히는 예술가의 그림보다
떡볶이를 먹다가 네가 휴지에 그려준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어느 겨울날 네가 건네준 보온병 속의
미역에 파묻혀 국물이 없던 미역국이,
내가 좋아하는 긴 시를
한 자 한 자 적어와 말없이 건네던 그 편지가,
나를 웃게 했고 울게 했고 살게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준비할 것이 없었다.
박물관이 무슨 요일에 쉬는지
이 거리의 맛 집의 메뉴는 무엇인지
어떤 관광객 카드를 사야 효율적인지,
모든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그 시간,
빨래를 널다가 눈인사를 나누는,
시장에서 같은 물건을 고르는,
길의 끄트머리와 골목의 끝에서 마주치는,
순간이 당신과 나의 가장 특별한 만남.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포르투갈어로 안녕, Ola- 이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할 테니까.
2017. 08. Lisb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