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속 도서관을 해석한 칼럼입니다. <국회도서관> 2020. 01월 호에 싣었습니다:)
인간을 알기 전에 인간이 되어서 시행착오를 겪은,
천사였던 인간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간.
도서관에서 비로소 이해하다.
인간이 되어가다.
인간의 음악이 연주되는 도서관
서가마다 책을 펼치는 사람들을 비춘다. 책장 옆, 책상 위, 벽에 기대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를 스쳐간다. 카메라 앵글이 사람을 지나칠 때 마다 한 문장, 두 문장, 수많은 문장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낮고 웅장한 목소리와 맑고 청아한 소리가 공존하며 인간들의 언어가 어우러진다. 이곳은 인간의 음악 언어를 합주하는 도서관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독일어: Der Himmel über Berlin)는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1987년 작품이다. 지상으로 온 두 천사의 시선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렸으며, 천사가 인간이 되는 과정으로 유한한 삶이 주는 무한한 가치를 표현했다. 개봉된 해에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영화 「시티 오브 엔젤」 의 오마주가 되었으며, 각본에 참여한 페터 한트케는 지난 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차 대전 직후 분열된 생각,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경계, 승전탑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천사, 혼잡하던 포츠담 광장의 폐허, 그 곳을 맴돌며 과거를 회상하는 시인 호머, 천연색 담벼락 아래서 웃는 아이들, 그리고 모든 천사와 인간이 찾아들며 공존하는 도서관. 영화는 장면마다 질문을 건넨다. 역사가 기록하는 것은 무엇인가, 승리를 누리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독은 어떻게 치유가 되는가. 삶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시를 읊조리는 대사로 감수성에 젖게 하고, 철학적인 은유로 삶을 고뇌하게 하는 영화의 백미는 색감이다. 천사 다미엘의 시선을 따라 흑백으로 상영이 되다가 그가 인간에게 사랑을 느낀 순간 처음 색깔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흑백의 기조로 유지되다가 다미엘이 인간이 될 때 세상은 총 천연색의 칼라가 된다.
천사들은 왜 도서관을 찾는가, 인간들의 언어는 왜 다르게 들리는가, 인간은 어떤 색깔을 가졌는가. 왜 사랑을 할 때 색깔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나의 색깔은 무엇인가. 「베를린 천사의 시」 도서관에서 의미를 찾아가다.
천사 같던 아이는 인간이 되기로 하다
영화는 천사 다미엘이 시를 쓰면서 시작한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란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한 주관도 관습도 없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Als das Kind Kind war)’ 라는 시나리오 작가 페터 한트케의 시의 구절이다. 다미엘의 글씨는 멈추지 않고 글씨는 화면을 가득히 채워간다. 마치 풀리지 않는 질문처럼.
아이들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천사를 알아본다. 아직 세상을 경험하지 못 했고, 선과 악의 경계가 없고, 무지에 가깝게 순수하다. 천사 같은 아이들. 그들은 세상을 경험하며 어른이 된다. 수많은 비극과 고통을 겪으며 인간 어른이 되고난 후 깨닫는다. 인간은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 나는 안다. 어떤 천사도 모르던 사실을」 영화의 말미에 다미엘은 글씨를 이어서 적는다. 아이 같던 천사에서 인간이 된 그의 고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마지막으로 자막이 적힌다. 「모든 전직 천사들에게 바침」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거리, 공터, 담벼락, 카페와 지하철과 같이 사람들이 머무는 곳을 찾는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며 위로를 건넨다. 공허를 느끼는 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살을 결심한 이의 얼굴에 뺨을 갖다 댄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다. 인간들은 구슬픈 울음을 그치지 않아 천사를 낙담하게 만들고 그대로 건물 아래로 추락해 천사를 절규하게 만든다. 천사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다. 그래서 애처로우며 눈이 부시다.
천사들은 만나는 모든 것을 기록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달이 떠오르는 시간, 비가 오던 날 한 여인이 우산을 접고 비를 맞던 모습, 노인이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 아이가 눈 한번 깜빡이지 않던 모습, 장님이 그의 시계를 더듬거리던 모습과 같은 장면이 기록된다. 인간이 감정을 나타내는 과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은, 어느 사람과 인생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미엘과 카시엘은 그들이 기록한 인간 세상을 서로에게 읽어준다. 흘러가던 삶이 이야기로 적혀간다. 그리고 다미엘은 인간의 평범한 이야기가 가치를 갖는 이유를 깨닫는다. 찰나, 순간, 지금. 단 한번 뿐인 의미가 만들어내는 삶을 동경하게 된다.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영원한 시간 속을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영원이라는 말은 싫어, 바로 지금을 말하고 싶어."
영화 속 천사들은 주로 도서관에 머문다. 도서관의 계단과 통로, 천장과 바닥에서 사람들을 지켜본다. 도서관은 영화 속에서 가장 소란한 소리가 들리는 공간이기도 한데, 도서관의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읽고 쓰고 말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인류가 바라고 갈망하던 것을 읽어내고,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전무후무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곳이 된다.
도서관의 책을 읽으며 현재를 새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이다. 인간을 바꿀 수 없지만, 인간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 조언과 애정을 보여주는 곳. 천사를 닮은 곳, 천사들은 도서관에 머물면서 인간을 격려한다.
인간 세상을 구경하던 다미엘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서커스단에서 공중회전을 하는 마리온, 그녀는 불안하게 아름답다. 하늘로 솟아오르고 싶은 열망과 땅으로 추락할 것 같은 두려움, 곡예사로 꿈을 이루고 싶지만 파산을 앞둔 서커스단,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는 날개짓은 화려할수록 초라해진다. 직업을 잃게 되는 것 보다 사람들의 상상과 기대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는 그녀의 꿈은 사랑을 찾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다미엘은 처음으로 어떤 감정이 든다. 이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이 사랑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이 꿈을 같이 꿀 수 있다면. 다미엘은 마침내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도서관, 흑백이 컬러가 되는 곳
영화 속에서 천사들은 도서관에 모여든다.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어떻게 감정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할까. 이에 도서관은 대답한다. 인간들의 모든 언어를 연주하듯 들려주며, 인간은 언어는 목소리가 아닌 의미라고 말한다.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볼까? 물론, 눈이다. 인간의 눈은 1만 7천 가지 색깔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은 다르다. 뇌 과학자 올리버 색스는 사람은 결코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눈은 빛을 인식할 뿐이며, 보는 것은 뇌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눈, 그 너머 언어가 있다. 우리는 사용하고 있는 언어만큼 볼 수 있으며 언어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파란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면, 파란색을 볼 수 있을까? 아프리카 나미비아 북부에 사는 힘바족의 언어에는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들의 언어에는 ‘세란두(serandu)’, ‘둠부(dumbu)’, ‘부로우(burou)’, ‘주주(zoozu)’, ‘바파(bapa)’ 다섯 가지의 색만 존재한다. 파란색은 초록색과 함께 '부로우'로 불린다. 학자들이 실험을 위해 힘바족에게 파란색과 초록색 사각형을 보여주며 구분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그들은 색깔을 구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비슷하게 보이거나 아예 다른 색이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리스와 러시아에도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밝은 파란색과 짙은 파란색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있다. 베를린 홈볼트 대학은 색깔에 대한 언어를 연구하며, 이러한 국가의 경우 다양한 파란색을 식별하는 능력이 다른 국가의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까지 세상을 바라본다면 흑백과 다름없지 않을까.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상에 더 이상 색깔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색깔 너머에 흐르는 생기와 의미를 읽을 수 없다면, 매일 맞이하는 새로운 하루는 단조로운 흑백으로 상영이 될 것이다.
파란색을 뜻하는 단어는 얼마나 다채로운 하늘색을 보여줄 것인가. 하얀색을 뜻하는 단어는 아무 것도 없던 공간을 어떤 색으로 채워 넣을 것인가. 노릇노릇한 색을 냄새로, 개나리 색을 온도로 느끼며 색깔을 다른 감각으로 연결해 낸다면 어떤 감각이 깨어날까. 도서관에서 다양한 언어의 설명을 읽어간다는 것은, 세상에 새로운 색깔을 채우는 일이다. 하나의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된다면, 인간 세상의 숨겨진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비단 색 뿐 일까. 유감스럽다는 형용사와 기쁨이라는 명사가 만나서 남이 당하는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을 뜻하는 ‘Schadenfreude’, 숲 속에 혼자 남겨진 편안한 고독감 ‘Waldeinsamkeit’는 타인과의 관계와 스스로의 고독을 새로이 해석하게 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뜻이 길고 번역하기 어렵다고 불리는 단어,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지원해 주기를 바라며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을 뜻하는 'Mamihlapinatapai'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드라마와 같은 인간 감정의 폭을 유추하게 한다.
인간을 알 수 있는 공간인 도서관은 천사를 위한 곳인가? 단연코 인간을 위한 곳이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인간을 위한 곳이다. 인간은 왜 어둠 속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지, 왜 매일 깊은 잠에 들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때로 사실이 아님에도 생생한 기억은 무엇인지. 인간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어가고 내가 되고자 하는 인간을 연구하는 곳이다. 신체 구조와 기능부터 언어와 신경에 이르기까지 알아갈수록 살아보고 싶은 인간이 되는 곳, 도서관이 될 것이다.
도서관, 단 한 문장을 적는 곳
천사 다미엘은 동료 카시엘에게 인간이 된다면 하고 싶은 것을 들려준다.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시고 싶어." 우리는 안다. 포츠담 광장에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커피란 모두 다른 의미이며, 그것은 곧 그들 자신이라는 것도. 한 모금 커피로 심장이 뜨거워질 수 있고 사색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커피의 맛이 아닌 커피의 의미를 느끼는 인간은 어떤 불완전함에도 완전해질 수 있음을. 그리고 커피의 맛을 느끼고 싶어 하는 천사는 이미 인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그런 다미엘을 향해 카시엘은 단호히 말한다. "바라보고, 모으고, 증언하고, 확인하고, 보존하는 것 이상을 하지 마. 정신적 존재로 남아, 거리를 둔 채로 떨어져.” 인간이 되고자 하는 동료를 안타까며 인간의 기록을 읽고 모으는 것에 그치라고 한다. 영화 속 도서관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쓴다. 그렇다. 새로운 이야기를 적어간다. 그러나 다미엘은 도서관 책상 위에 놓인 연필을 손으로 잡는다. 그때, 결심한 것이 아닐까. 인간으로서, 삶의 기록을 적어가고 싶다고.
쓰는 것. 인간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다. 인간이 쓰고 읽고 다시 쓸 때, 인간의 세상은 변한다.
도서관은 글을 쓰기 위한 단어의 공간이다. 나의 세계에는 어떤 단어가 있는가. 한 국가의 단어를 알면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전쟁에 관한 동의어가 많은가, 독립에 관한 동의어가 많은가. 북극 해에 사는 이누이트 족은 흩어지고 날아가고 쌓이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고,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헌은 흰색을 가을 달의 흰색과 별의 흰색으로 나누어 부른다. 나는 어떠한가. 어떤 단어를 많이 알고 있는가. 행복은 오직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지만, 우울을 표현하는 단어로 삶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도서관은 나의 동의어를 찾고 예시와 각주를 넓히는 곳이다. 새로운 단어와 수식어로 표현하는, 단 한명의 인간이 되는 곳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누구를 사랑하고 싶은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자들의 문장 속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적어가는 곳이다.
인간은 죽는다. 어쩌면 그게 삶의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언어를 쓴다. 그게 우리 삶의 척도일지도 모른다. We die. That may be the meaning of life. But we do language. That may be the measure of our lives.- 토니모리슨 (Toni Morrison, 흑인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과 퓰리처상 수상했으며, 언어로써 성과 인종의 평등을 제기했다)
사랑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다
다미엘은 마리온을 사랑하게 되며 인간이 되기로 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감각을 느끼고 이야기를 창조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은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삶이란, 이 세상을 헤매다가 끝내 자신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던가.
지상으로 떨어져 인간으로 눈을 뜬 다미엘은 행인에게 담벼락의 색을 묻고, 가게에서 손목시계를 산다. 다른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를 고유하게 만들고, 시간을 모든 행동에 가치를 부여한다. 영화는 끝없이 묻는다. '왜 나는 네가 아니고 나일까? 왜 나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을까? 시간은 언제 끝나고 공간은 어디서 끝날까?' 같은 질문을 건넨다. 그리고 우리는 도서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그 가치는 무한하게 써내려갈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곳, 나의 문장을 적고 세상의 맥락을 이해하는 곳, 도서관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좇으면 초라해지지만 공중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좇으면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달이 떠오르던 밤, 다미엘과 마리온이 만나고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다. 그들은 서로의 쓸쓸함을 알아본다. 고유하기에 외로운 존재, 서로에게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인간으로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
마리온이 공중 곡예를 한다. 날개를 떼어내고 자유롭게 올라탄 줄을 아래에서 잡고 있는 다미엘의 팔에 선 힘줄이 팽팽하다. 다미엘은 고백한다.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천사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변함이 없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것은 생명을 뛰어넘는 가치이다. 감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완전함, 언어로 여행할 수 있는 무한함, 그리고 사랑을 함으로써 인간의 천사가 되는 과정을.
모든 전직 천사들에게 바침
Dedicated to all former angels.
- 베를린 천사의 시 (Wings Of Desire, 1987)
천사들이 머무는 곳. 인간을 꿈꾸는 곳. 도서관에서 어떤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경험이 만들어낸 의미와 예감이 만들어가는 설렘을. 세상의 색깔이 달라지고 심장이 뜨거워진다.
도서관에서, 인간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