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에게 도움이 되거나, 공감받고 싶어요.
거의 3~4번의 MBTI 검사를 했던 것 같다. 매번 < ENFP : 재기 발랄한 활동가 유형> 이 나오는 걸 보고 나는 피해 갈 수 없는 엔프피(ENFP)라는 것을 인정했다. 보통 성격 유형 검사는 늘 정확하지만은 않고, 영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MBTI는 그중 정확한 편에 속한다. (그렇게 평가를 받고 있다.) MBTI 결과지 내 ENFP 유형의 특징을 읽으면 내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놀랍기만 하다.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MBTI 검사는 워낙 유행하여 안 해본 사람도 거의 없어서, 하나의 흥미로운 주젯 거리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MBTI를 묻는 것이 익숙해졌고, 대부분 자신의 유형을 알고 있기도 하다. 해석을 읽어보며 그 사람에 대해 대략 파악도 할 수 있어 좋다. 같은 MBTI유형을 만나면 왠지 모를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또, 실제로 같은 성격 유형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비슷한 대처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을 인식한 후,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성격 유형 검사나 간편한 테스트들이 유행하는 이유는 첫 번째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 두 번째가 같은 유형과의 공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찾아온 슬럼프를 극복한 방식이 굉장히 ENFP스럽다(?)고 생각했고, 극복하는 방법을 몰라 어딘가에서 허둥대고 있을 또 다른 ENFP에게 '나처럼 해 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이다.
슬럼프 극복기를 이야기하기 전, 나에 대해 짧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3번의 퇴사 후 1인 사업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각 회사에 재직한 기간은 모두 1년 미만이었는데,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회사에서 제공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마지막 퇴사 후 취업을 하지 않고 홀로 서기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름의 생각도 있고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에 만족하고는 있었지만, 일단 저지르고 본 터라 구체적인 계획이 부재했고 재정적인 문제나 비즈니스 운영에 대한 고민들이 혼합되어 머리를 많이 복잡하게 했었다. '나는 아직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으며 슬럼프가 찾아왔다.
많은 ENFP가 공감하는 점 중의 하나는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ENFP가 '나 우울해~' 하는 것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사실 쉽게 우울해 하지만 쉽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수많은 우울 중에 진짜 슬럼프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이 있는데, 그 기간에는 어떤 일을 해도 기분이 딱히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ENFP가 그렇듯이, 가만히 앉아서 우울을 느끼고 있지만은 않다. 밖으로 나가서 해결책을 찾아 헤매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ENFP는 넓은 인맥의 소유자다. 친분이 있다고 하기도, 없다고 하기도 뭣한 '얕은 인맥'의 사람들도 주변에 널려있다. 예전에는 고민이 있을 때 그저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면 요즘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방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ENFP의 얕은 인맥이 이럴 때 도움이 많이 된다.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팔로우 목록을 뒤졌다.
1. 아는 사람 중에 내 사업적 고민을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2. 인생 선배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산 사람)이면 더 좋겠다.
약 2년 전 소모임 어플을 잘 활용하던 시기가 있었다. 독서 모임이자 친목 모임이던 곳에서 핼러윈 파티를 개최했고 그때 인스타그램 ID를 교환했던 분이 내 눈에 띄었다.
당시에 계정을 공유하고 서로 팔로우했을 때만 해도 그저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이었는데, 소식을 받아보다 보니 5~7인 정도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마케팅 회사의 대표님이었다.
그때 한 번 본 이후로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았지만 며칠 간 고민하다 용기 내어 DM을 보냈다.
사실 얼마 전 켈리 최 회장의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그녀가 힘들 때 무턱대고 도움을 청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니 용기 내어도 괜찮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정말 생각보다 돌아오는 대답은 살가웠었고, 용기 낸 것이 보답받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DM을 나누고 이틀 뒤, 나는 위 대표님을 만나 나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어떤 보상도 없이 나의 사업 아이템과 사소한 고민들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상담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사업을 무턱대고 시작했다며 본인도 예전에 힘들고 어려울 때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신의 예전과 비슷하다며 많이 격려해 주셨다. 놀라운 사실은 대표님도 나와 같은 ENFP 유형이었던 것. 역시 ENFP들은 밖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ENFP 특유의 친화력으로 자리가 마무리된 후 오빠 동생 하기로 하며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친구가 공유해 준 ENFP 짤 중에 너무 공감되어 아직까지도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는 짤이 있다.
실제로 ENFP 유형을 설명할 때 많이 보이기도 하는데, 단순해서 우울한 기분이 오래가지 않는 ENFP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 준다.
우울감이 찾아오는 정도와 깊이는 사람마다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나와 내 주변의 ENFP는 대부분 공감했던 것 같다. 즉흥적이고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번에 찾아온 슬럼프도 남들에 비해 빠른 시일 안에 이겨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살기 참 편한 성격 유형이다.
이런 ENFP에게도 단순히 놀러 나갔다 오는 것으로 공허함과 고민거리들이 해결이 안 될 때가 있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닌 깊은 슬럼프의 경우에 시도해보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뜬금없지만 나는 사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주 보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 집을 가도 전부 비슷한 결과를 들으며 이제 그만 보러 다녀야지 했었다.
하지만 생각의 실타래가 꽁꽁 묶여 내 시야를 좁히고 있다면, 가끔은 명리학의 풀이에 기대어 시선을 바꿔보는 시도도 방법인 것 같다.
생년월일과 기타 인적 사항을 말하자마자 나의 특성들을 줄줄이 파악하던 명리학 선생님은,
내게 이번 연도 운이 정말 안 따라주고 힘들 것이니 '자숙(?)'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대신 2025년, 준비가 잘 되어 있다면 대 횡재의 운이 있다는 말로 날 위로했다. 정말 나에게도 대 횡재가 찾아올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지금 벌려놓은 일들을 잠시 접어볼까도 생각했다. 사주를 보기 전에는 생각에 없던 옵션이었는데, 현재의 불안정한 상태를 뒤로 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꾀하는 옵션을 다시 고려해 봤다.
결론적으로는 이야기 나눴던 대표님과 사주 풀이의 조언 방향은 일치했으나, 나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다시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 보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럴 거면 왜 조언을 구하러 다녔나 싶을 수도 있겠다. (고집이 센 것도 ENFP유형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사주가 고집이 세다는 점은 어딜 가나 공통적으로 언급하더라.) 핵심은 어떤 조언을 듣던 간에 이러한 기회를 가지면 내 마음에게 다시 물어볼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후회안 할 자신 있는지, 대책은 무엇인지.
마음 가짐을 다시 다잡고 슬럼프 때와는 다르게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내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인생에 역시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걸어가다 또다시 슬럼프를 마주하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면 될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또 다른 시각들을 마주하고 나의 방향을 다시 되짚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또 성장하지 않을까?
힘든 날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나를 마주하며 '참 ENFP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밤이다.
ENFP들의 고민이 하루라도 줄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감을 건네보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