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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Aug 03. 2021

네가 꿈꾸는 어른의 모습은 뭐야?

하루하나 글쓰기 챌린지 30일,열다섯번째


상상 속의 어른을 만나다.


강남에서 볼 일을 보고 밤늦게 귀가하던 중이었다. 

광역 버스에 앉아 올림픽대로 위 돌아오는 길의 한강 풍경을 참 좋아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부러 노랫소리를 높이고 음악과 한강의 경치를 맞추어 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로 옆에서 달리는 차 안의 남자였다. 

한쪽 손은 운전대를 잡고 한쪽 손은 핸드폰을 입 가까이 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밤늦은 한강의 풍경을 뒤로 남자는 운전을 하며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한다. 


순간 그 모습은 내가 상상하는 '어른'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스무 살, 막연하게 꿈꾸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여의도에서 사원증을 메고 스틸레토 구두를 신은 채 또각또각 걷고 있는 것이었다. 

당당한 걸음을 걷는 나를 상상하며 토익 점수를 따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수정했다. 

상상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회사원이 되어 보고 나니 구두는커녕, 매일 편한 바지를 입고 민낯으로 헐레벌떡 출근하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구두를 신고 사원증을 메고 출퇴근을 하는 게 꼭 어른의 모습일 필요는 없구나' 생각하곤 조직을 나왔다. 






그로부터 약 10 여년이 지난 지금도 늘 나는 아직 어른이 덜 됐다고 말하고 다녔다.

생각의 성숙함이나 포용력, 리더십 등 추상적인 것들로 어른의 기준을 정하는 건 아직 내겐 너무 어렵기만 했고, 그저 스스로 아직 난 어른이 아니라고 여겼을 뿐인데, 한강을 달리는 남자를 본 순간 깨달았다. 

이처럼 생각한 단순한 이유는 그는 차를 타고, 나는 버스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차 안에 앉은 그 남자처럼 본인의 차 안에서 (물론 본인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밤늦은 드라이브를 하는 정도는 되어야 어른 폼이 난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의도에서 사원증을 멘 모습을 위해 싫어하는 것들을 해내던 스무 살의 나와,

물질적인 여유를 얻어 내 차를 사서 여유롭게 한강을 드라이브하는 모습을 위해 싫어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것도 어찌 됐든 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 많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원증을 멨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것처럼, 내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한다고 모든 게 충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우연히 마주친 한 장면 앞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귀갓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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