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나 글쓰기 챌린지 30일, 열일곱 번째
요즘 들어 내가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이었나 싶을 때가 간혹 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굳이 지키지는 않는 즉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나 보다. 반복적인 루틴을 꽤 지키고 싶어 하는 축에 속하며, 어긋남에 예민한 편이다.
처리할 일이 조금 늦어지는 건 아무렴 괜찮지만 주로 스트레스받는 상황은 나의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상의 루틴이 깨지는 데에서 왔다.
예를 들면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건강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주 4회 운동하기를 목표로 삼았는데, 다른 일정 때문에 운동 일자를 이동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주 4회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괜한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운동뿐만 아니라 일하는 것도 하루 채워야 할 할당 치를 혼자만의 약속처럼 가지고 있는데, 나의 능력 부족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으로 못하게 된다면 "아 그것 때문에 못했어."라며 '방해받는다'라고 느낀다.
그러나 더 큰 중요한 일이 있다면 나와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유연하게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마저 '방해받는다'라고 느끼니 문제다.
오늘도 내 루틴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짜증만 냈다. 이런 태도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지 않기에 스스로를 많이 꾸짖고 싶은 날이었다.
방학을 맞아 집에 온 동생, 그리고 평일 오전마다 일을 나가는 엄마,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아빠, 그리고 그냥 일상이 바쁜 나. 네 명이 시간을 맞춰 어딘가 외출을 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 할 일을 하는 다음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만의 평일 루틴을 깨기 싫어서 그 전날도 카페에 함께 가자는 걸 거절했었다. 그런데 일주일의 휴가를 받은 엄마가 가족끼리 함께 외출을 했으면 했다.
당일치기 강화도에 가자고 제안했을 때 처음엔 또 거절했다. 이유는 역시 '운동도 해야 되고 할 일도 많아서'였다. 그런데 문득 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함께 시간을 보내겠어, 라는 마음이 들었고 나에겐 가족과의 시간 보내기도 중요한 과제이기에 다시 말을 바꿔 "그래, 같이 가자." 했다.
강화도로 출발하면서 이미 가기로 했으니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출발하는 순간부터 왠지 내 신경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가 있었다. 차 안에서 엄마의 재잘재잘 수다에 응해주지 못하고 그 시간을 개인적인 휴식 시간처럼 썼다. 이어폰에 음악을 크게 틀어 둔 채로 귀를 막았다. 식사할 때도 괜한 투정을 부려 온 가족이 눈치 보는 상황을 만들었다. 생각할수록 특별한 일도, 오늘 안 한다고 큰일 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괜한 짜증으로 가득 차 가족들에게 상처만 남겼을까? 나는 왜 이리 유독 가족에게만 모났을까.
누군가와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나에게 요즘 가장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지금 나에게 흐르고 있는 시간과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나는 그 방면에서 젬병이다. 정말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계획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해 괜한 투정을 부리고, 내 문제와 고민거리들과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도 그것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야 말로 기분이 태도가 된 꼴이고 남 탓을 하는 꼴이다. 하루를 괜한 툴툴거림과 자책감으로 보내고 나니 역시 기분이 상쾌하지 않다. 우리 가족은 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조바심 내어 시원한 곳을 찾고, 장거리를 운전해 주기도 하고, 내 시간을 맞춰 주기 위해 더 즐기고 싶은 걸 참고 일찌감치 강화도에서 돌아왔어야 했는데... 나만 배려를 잔뜩 받은 날이었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기 쉬웠고, 그래서 스스로도 즉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루틴이 생기자 루틴에서 벗어나는 게 꽤 스트레스의 상황으로 다가왔다. 아직은 내가 일정을 유연하게 다루는 스킬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뿐이기에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얼마든지 예외의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 있고,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너무 크게 다룬다면 나도, 주변도 힘들 것 같다.
앞으로는 이미 벌어진 일, 변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시간에 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주어진 순간에 집중하는 힘을 길러야 할 것 같다. 즐길 때는 즐기고, 할 땐 하는 사람이 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