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나 글쓰기 챌린지 30일,열여섯 번째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공감력과 몰입도가 지나치게 좋은 아이였다. 지금도 그렇다는 평가를 종종 받지만 청소년 시기에는 정도가 심했다. 슬픈 영화를 보면 영화관을 떠나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었다. 너무 울어서 코가 빨갛게 부어올랐던 영화들은 '하모니(2010)', '우행시(2006)', '백만장자의 첫사랑(2006)'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하모니와 우행시는 슬픈 영화로 명성이 나있다곤 하지만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보곤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내용조차 기억이 안 나지만 옆자리에서 똑같이 눈과 코가 빨개져 훌쩍이던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성인이 된 다음에는 '늑대소년(2012)'를 보고 목놓아(진짜 목놓아) 울었다. 영화가 끝나고 여운 때문에 극장 엘리베이터 안에서 친구와 마주 보고 울먹이며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스무 살, 그리고 그게 영화를 보고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슬펐던 기억이다.
그 이후로는 나에게 실제로 슬픈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이었다. 연인과의 이별,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상과의 괴리를 겪으며 왔던 좌절감. 반면에 감동적인 순간들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떤 경험 후에 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많아질수록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이전처럼 심하게 울지 않게 되었다.
스크린 속 슬픔은 나의 청소년기, 백지처럼 새하얀 종이에 연한 밑그림을 그려 주었을 뿐이었다. 알게 모르게 10년이 흐르는 동안 백지는 진한 선과 점으로 채워지게 되었고 지금 내가 가진 종이는 거미줄처럼 빈 틈새가 보일 뿐 그나마 채워져 있는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코 끝이 찡하다. 타고난 공감력과 감수성은 어디 가지 않지만, 눈물 버튼이 참 뻑뻑해졌다. 눌러도 잘 안 눌러진다고 해야 할까...
'이상하다.. 이 정도 장면엔 울어야 하는데..' 할 때도 나는 울지 않게 되었다. 한 편으로 아쉬운 기분이 든 게 사실이다. 목놓아 울고 나면 어딘가 멋쩍지만 시원한 기분, 영화를 제대로 즐긴 기분이었다. 그때는 그게 영화 보는 재미기도 했다. 일부러 슬픈 영화를 골라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나에겐 몇십 년씩, 경험 종이가 빼곡해 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지고 찢어질 만큼의 삶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수명이 길든 짧든 경험의 양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경험으로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좋든 싫든 아프든 상관없다.
경험이 채워질수록 나는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자극에도 꼼짝없는 노련함을 가지는 것은 역시나 멋진 일이지만, 반대로 그게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자극을 충만하게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니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가 좋으면 하나를 포기하는 것은 역시 진리이겠지.
홍수처럼 쏟아지는 경험 안에서 불가피하게 받는 상처들을 어찌할 방도는 없다. 다만 작은 자극에도 목놓아 꺼이꺼이 울곤 했던 여린 마음 안 씨앗은 지켜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