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롱 Aug 05. 2021

오랜만에 입은 타이트한 치마

하루하나 글쓰기 챌린지 30일, 열여덟 번째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운동하거나 잠시 동네 마트를 다녀오는 것 외에는 외출할 일이 거의 없다. 예전에는 반짝이고 큰 귀걸이도 많이 하고, 치렁치렁한 레이스 치마도 좋아했는데 요즘의 나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검거나 흰 색상이면서 허리가 고무줄로 된 의상을 선호한다. 코로나 시국 탓으로 마스크를 자주 착용하니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일도 드물다.

1시간 넘게 걸리던 치장이 5분, 10분으로 줄어들자 시간을 좀 더 여유롭고 다른 더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점점 민낯도 나름대로 괜찮아 보이는 지경까지 와버려서 요즘의 나는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할 것만 같은 내추럴한 모습이다.


편리한 게 좋아서, 그리고 딱히 꾸미고 나갈 일이 없어서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만, 가끔은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SNS나 미디어 속의 예쁜 여성들을 보다 거울을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거다. 그럴 때면 괜스레 눈썹이라도 한 번 더 그려보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딱히 없다.


예쁘게 꾸민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어중간하게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타입이면 귀찮음과 높은 기준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며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쁘고 멋있는 스타일이 어떤 건지 직감적으로 알긴 하겠는데, 그렇게 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도 눈에 다 보이니 나는 저러고는 못 살겠네, 하면서 아예 멋 내기를 포기하는 식이다.





오랜만에 입은 타이트한 치마

바로 어제 있었던 가족 여행에서 오래간만에 허리 사이즈가 작고 불편해서 입지 않았던 치마를 꺼내 입었다. 그 치마를 입는 건 적게 먹고, 배에 하루 종일 힘을 주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유독 오늘 예쁘다며 좋아했다. 나도 썩 마음에 드는 착장이었다. 기분이 좋아졌고 최근에 거의 찍지 않던 내 사진도 몇 개 남겼다.


배를 쏙 집어넣고 걸으니 늘 삐뚤게 앉아 비틀어진 몸이 바로 섰다. 더운 날씨라 치마 안 쪽은 통풍이 안 되어 답답하고 땀이 많이 났다. 그 점은 매우 불쾌했다. 그래도 거울 속에 비친 나는 평소보다 1.5배 정도 날씬해 보였다.

맛있는 먹거리가 가득한 밥집에서도 배가 터질 듯이 먹지 않고, 밥을 적당히 남겼다. 포만감이 딱 기분 좋은 정도라 발걸음이 가벼운 날이었다. 그날의 나는 타이트한 치마 덕에 왠지 스스로를 보살피게 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입는지는 본인 선택이다. 편한 옷만 입고,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타인이 나무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가 의도한 불편함으로 마음가짐이나 애티튜드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주는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물론 압박이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안 입던 타이트한 치마를 꺼내 입어본 것은 그날 제일 잘 한 선택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해받는다'는 철없는 생각은 그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