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서
정부에서 하는 청년 취업 지원 프로그램의 과정에서, 직업 심리 검사라는 것을 했다. 몇 가지의 질문으로 나에게 맞는 직무와 적성을 평가한다는게 탐탁치는 않았지만, 결과는 항상 수긍할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본 심리 검사에서 조금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어떠한 수치보다 '스트레스 취약성'이 가장 높게 나온것. 상담사 분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냐고 물었고,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결과에 충격받은 이유는 나 스스로도 최근에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학기 종강 후 게으르고 싶지 않은데 게을러지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때부터, 난 끊임없이 뭔가를 해왔다. 방학 때는 방학의 목표가 있었고 학기 중에는 학기를 무사히 넘기는 것 외에도 이것저것 시험 준비와 하다못해 다이어트라도 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들, 그리고 너무나 모호한 '취업'이라는 목표가 나를 무기력감에 빠트렸다.
그러다보니 당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남자친구에게 계속 연락을 갈구하게 되고, 혼자 속앓이를 했다. 집착이 시작되는 것 같아 겁이났다. 그 사람은 그의 세상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의 시간만 느리게 흘러갔다. 이런 나에게 그가 말했다.
"어쩌면 네가 취미가 없어서 그런걸지도 몰라. 네가 했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거, 그리고 취미가 특기로 이어질만큼 흥미로운 일들, 그런 것들을 찾아봐. "
의아했다. 이력서에 기입하는 내 취미는 '영화, 독서, 여행' 항상 이 레퍼토리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대답했다.
"나 영화보는 것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은 여행도 가잖아. 이미 취미가 있어."
"글쎄, 그런 건 취미가 아니지. 누구나 영화보고, 독서하고, 여행하긴 해. 딱 그정도 아니야? 넌 시간이 지나면 그것마저 지루해 하니까. "
그런가. 생각해보면 영화도 하루 종일 앉아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책도 하루에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가는 편이지만, 배낭을 메고 언제든 훌쩍훌쩍 떠나버리는 그런 부지런한 인간도 못되었다. 사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한 곳에 흥미를 길게 못 두는 성격이다. 변화를 줘야 리프레시가 되고, 단조로운 일상에 힘겨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집 안에 갇혀있으니 스트레스는 점점 늘어나고 이를 관리할 줄 몰라 쩔쩔맸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이제야 인지하기 시작했고 앞으로의 내가 걱정되어 방법을 찾고 싶은데,이리도 검사 결과가 극명하게 나와주니 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는 요리를 하고, 누구는 운동을한다. 취미 활동을 할 때 만큼은 진지하고 시간가는 줄을 몰라서 스트레스와 고민거리를 싹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런 활동이 정말 나에게도 있을까 의아하다. 아마도 나는 진득하니 같은 일을 9시간, 10시간 할 수 있는 누군가와는 다를 것이다. 취미가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을 나눠서 여러가지 일을 하는게 훨씬 효율적이고 나와 잘 맞는다. 그래도 뭔가를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요소가 굉장히 필요한 시점이니, 아마 찾아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취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어떤가에 몰입하거나 많은 시간을 한가지 일에 투자해본 적이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알아가는 이 마당에 슬쩍 실망스럽다. 나는 멀티태스킹형 인간에 가깝다. 이것저것 다 해보려하고, 다 중간은 가기에 무리 없지만 전문가는 되기 힘든 그런 사람.
스트레스 해소도 이런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렇게 내 복잡한 생각을 풀어가며 한글자, 한글자 써가는게 나에게 도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어느정도 돈을 벌 때가 오면, 사소하지만 습관적인 구매 행태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우연히 취미로 시작한 운동에 푹 빠져버릴 수도 있겠다.
확실한 건, 나는 아직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라는거다. 내 자신의 작은 결점 하나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바로잡으려고 하는, 자기애가 풍부한 건강한 20대라는 거고. 이렇게 살다보면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도 생길것이다. 지금 가장 걱정하는 일들도 잘 풀려 있을 게 분명하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미쳐있는 취미 따위 없어도 좋다. 그렇게 일단은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게 최선이며, "지금은 괜찮다."고 계속 말해주는 행위가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이렇게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나'를 인정하고 그 땐 굳이 찾지 않아도 진정으로 취미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