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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kown Kim Jun 28. 2019

사악한 블루보틀

왜 줄 세우기를 하는 걸까요?

 휴가인 듯 휴가 아닌 휴가 같은 휴가를 보내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간신히 시간을 내서 그 유명한 블루보틀에 도전했습니다. 도전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 유명한 줄 세우기 때문이지요. 6월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30도를 압박하는 야외에서 줄 세우기를 하는 블루보틀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30분 정도 줄을 서니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는 블루보틀을 무척이나 멋있었지만 안에 들어간 블루보틀은 완전 신세계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30분여를 기다린다는 사실에 좌절했습니다. 리테일 적으로 블루보틀에 대해서 정말 얘기할 것이 많이 있지만 우선 가장 먼저 줄 세우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왜 줄을 세울까요?


 제가 관계자는 아니지만 줄 세우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장 먼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부 공간의 인력의 수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여유입니다.


 현 블루보틀은 주중이건 주말이건 1200명에서 1400명의 인원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간은 지하층을 다 쓰고 있으므로 3000-4000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인원이 한꺼번에 다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말 그대로 엄청난 아비규환일 것입니다. 일 처리도 늦어지고요. 또 빨리 공급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커피 맛도 보장하기 힘들 것입니다.


 한 시간 좀 안되게 기다려서 들어간 블루보틀은 딱 제가 경험하기 좋을 정도의 사람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커피나 다과를 시키는 것도 주문이 나오는 것도 딱 적당한 시간이 흘러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좋았던 것은 앉을자리가 적당히 있었다는 것이죠.


 줄 세우기의 두 번째 장점은 기대감입니다. '순간의 힘'이라는 책에서 보면 '지속 시간 경시'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에서 안 좋은 쪽과 좋은 쪽을 연결해서 경험한다면 앞쪽의 경험이 희미해지면서 결국은 좋은 쪽의 경험이 강화되었다고 결론을 낸다는 것이죠.


 블루보틀의 경험이 그런 거 같습니다. 더운 곳에서의 기다림이 좀 더 시원한 에어컨으로 바뀌고 기다림이 끝나고 각종 제품과 커피를 구경하다가 결국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그 경험이 앞에서 얘기한 '지속시간 경시'에 딱 어울리는 예시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 한 시간 동안 기다린 것보다는 짧지만 좋은 커피를 마시고 디자인을 경험했구나 하는 기억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 것이죠. 결국 매장 내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줄 세우기의 장점은 바로 명확한 수요와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줄 세우기의 단점은 뭘까요? 바로 귀찮으면 집에 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다리면서 지쳐서 돌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기다리신 진성 고객분들이 매일매일 비슷하게 1200분 정도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우선 공급을 원활하게 해 주죠. 원두를 무리하게 많이 볶을 필요도 없고 그러다 보니 남아서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볶은 지 2주 이내에 최상의 맛을 주는 원두의 특성상 최고의 상태로 고객분에게 커피를 내릴 수 있게 하죠. 또 팔고 있는 제과 제빵 제품들도 무리하게 방부제를 쓸 필요 없이 딱 오늘 팔 것만 주문할 수 있게 됩니다. 우유는 어떨까요? 매일 사용량을 예측할 수 있으니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를 쓸 필요도 없겠죠?


 실제로 제가 27일에 구매한 원두는 24일에 볶아진 것이었고 집에 와서 내리니 최상의 맛을 뿜어주었습니다. 이것은 할리스나 스타벅스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럼 줄 세우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뭘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귀찮아서 이탈하는 고객분들일까요? 아닙니다. 줄 세우기의 맹점은 바로 전체 매출을 일정 부분 이상 더 많이 일으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해법에 대해서 블루보틀은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객단가' 그리고 그 객단가를 높이는 방법으로 '액세서리'를 제시합니다. 네네 저도 나오면서 300g 원두 한봉이랑 아리타에서 만들었다는 드립퍼 그리고 필터들을 사 왔습니다. 객단가 6만 원이 넘었네요. 쿨럭. 그만큼 블루보틀은 악세사리의 디스플레이와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대학생 때 파리에서 루이뷔통 매장 앞에서 줄을 서본 적이 있습니다. 기분 나빴지요. 하지만 안에 들어갔을 때의 기분은 전혀 달랐습니다. 직원분들은 친절했고 내부 온도는 그만큼이나 따뜻했습니다. 그 기분을 성수동 블루보틀에서 느꼈네요. 스타벅스를 무너뜨린다면 그것은 블루보틀이겠네요. 역시 커피계의 애플이라고 할만합니다. 리테일적으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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