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1: 《아내는 서바이버》 (나가타 도요타카 지음)
“먹고 토하는 일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방이야.” 결혼하고 몇 년 뒤부터 섭식장애가 나타난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었다. 무엇이 아내를 이 괴이한 비밀의 방으로 밀어 넣은 걸까? 남편의 사랑으로는 아내를 그 방에서 나오게 할 수 없는 걸까? 과식과 구토를 준비하는 아내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소중한 시간이니까 방해하지 마.”
아내는 철들 무렵부터 아버지에게 맞아 얼굴과 몸에 상처를 달고 살았다. 어머니는 딸이 이혼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 뚱뚱하다는 소리를 들은 후부터 과식과 구토를 시작했다. 그런데 속에 든 음식을 모조리 토해낼 때면 폭력도 폭언도 다 잊을 수 있었다. 첫 번째 결혼 후에 지배욕이 강하고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던 남편이 견디기 힘들 때도 먹고 토하는 일로 피신했고, 결국 결혼 생활은 한 달 만에 끝났다. 2년 뒤 저자와 결혼한 아내는 얼마 지나 친정 부모와도 완전히 연을 끊었다.
섭식장애가 드러난 것은 저자와 결혼하고 3년 후인 스물아홉 살 때부터였다. 아내는 발열, 권태감, 저칼륨혈증 등의 증상으로 종합병원에 입, 퇴원을 반복했다. 저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터라 장시간 아내를 차분히 돌볼 수 없었다. 그사이 아내는 아는 남자에게 성희롱당한 충격으로 환각을 경험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서른여덟 살부터는 알코올 의존증도 심해지고, 급성 간염으로 입원하기도 했다. 마흔 살에 드디어 상담을 시작해 수년간 자신의 과거를 직면했지만 알코올 의존증은 그대로였다.
10년 넘게 배우자를 간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밤까지 과식과 구토가 이어지고, 무턱대고 감정이 폭발하고, 자살 충동에 환각과 환청까지 경험하는 아내 곁을 지키면서 파탄 직전의 살림을 챙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다. 결국 적응 장애 진단을 받은 저자는 3개월간 일을 내려놓고 항불안제를 복용하며 숨을 골랐다. 복직 후에도 한동안은 부담이 적은 일들만 맡았다. 온종일 술을 마시는 아내를 감당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지만, 괴물이란 환자가 아니라 병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아내는 간경변, 대퇴골두 괴사증, 토혈, 설사, 복통 등 알코올 의존이 불러온 온갖 합병증에 시달리다 결국 46세에 응급 이송되었고, 알코올성 인지저하증(치매) 판정을 받았다. 넉 달 만에 병원에서 나온 아내는 저자가 이 책을 내놓을 때까지 근 2년간 똑같은 일정 속에 생활 리듬을 지켰다. 술은 끊었지만 여전히 섭식장애가 잔존하고, 인지저하증도 경미한 상태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인지저하증으로 인해 최근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싫은 일은 금방 잊는다는 장점도 있다고도 했다. 어렵게, 평화를 되찾았다.
이 책은 아내의 투병 이야기를 기사로 써보라는 동료 기자의 제안으로 2018년 『아사히 신문』 디지털판에 「아내는 서바이버」라는 제목으로 총 6회 연재한 기사에서 출발했다. 그 후 4년간 글을 다듬어 완성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가 보기에 아내가 20년간 의존증과 기벽에 빠진 것은 ‘살고 싶어서’였다. 어린 시절에 겪은 학대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겪은 성 피해를 이겨내려면 과식과 구토, 음주 같은 ‘진통제’가 필요했다. 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살려고 한 일들이었다.
저자는 해로운 증상에 사로잡히는 아내가 간간이 드러내는 인정 어린 모습을 포착할 줄 알았다. 기자로서 아내 덕분에 문제의식이 날카롭게 벼려졌다고도 고백했다. 20여 년간 캄캄한 터널을 지나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같이 살자.”라고 고백하는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더불어, 나는 괴로울 때 어떤 진통제를 찾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최근 몇 년간 내게 가장 큰 위안을 준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다. 며칠 전에는 소설 《백치》에서 등장인물 입폴리트가 딱하디딱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을 읽는데, 무력감에 짓눌려 있던 내 마음이 일순간 보드랍게 풀어지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각자가 피해 있을 비밀의 방이 부디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