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4: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엄마도 스위스 갈까?” 말기암 환자인 엄마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저자는 엄마를 말릴 수 없었다. 오히려 엄마가 외롭게 홀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랑하는 딸에게 죽으러 가겠다는 말을 꺼내야 했을까.
1944년생 조순복 씨는 65세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 끝에 10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건강한 날들만 남았다고 믿으며 들뜨던 것도 잠시, 완치 판정 후 1년 만에 골반, 허리, 무릎 부위의 뼈로 암이 전이되었다. 다시 나타난 암은 매섭고 집요했다. 1년 뒤, 2차 뼈 전이가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위장에도 전이가 되었다. 게다가 조순복 씨는 허리 수술을 네 번이나 할 만큼 고질적인 허리 통증도 평생 안고 살았다.
뼈로 전이된 암은 극심한 통증으로 악명이 높다는 저자의 말에, 내 평생 겪은 최악의 통증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았다. 2023년 여름에 처음으로 코로나19에 걸려 꼬박 일주일을 앓았다. 빈속에 독한 약을 먹은 탓에 너무 메스껍고 어지러워서 손발을 다 짚고 화장실까지 기어가 변기를 붙잡고 억지로 초록색 물을 토해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처음으로 암 환자들의 일상을 상상했다. 하루하루, 1분 1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조순복 씨는 통증 때문에 자다가도 비명을 지르며 깨기 일쑤였고, 손발에 발진이 돋아 가려움증에 시달렸으며, 진통제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운 변비도 겪었다.
지옥 같은 고통을 그만 멈췄으면 하는 엄마를 위해 저자는 선봉장이 되었다. 스위스에 있는 기관 두세 곳을 알아보고, 그중 ‘디그니타스’로 가기로 한 뒤에는 각종 서류 준비와 번역, 의사소통을 도맡았다. ‘끝을 맞이하러 가기 위해’ 출국을 준비하며 주민센터, 은행, 재외동포청 등을 방문할 때는 이리저리 둘러대야 할 때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순복 씨의 여정에는 다큐멘터리 팀도 동행했다. 조순복 씨는 자신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촬영 제안을 수락했다. “죽기 전까지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무사히 스위스에 도착한 조순복 씨. 2023년 8월 3일, 디그니타스에서 운영하는 블루하우스에 들어가 먼저 구토억제제를 마셨다. 30분 후, 펜토바르비탈나트륨이라는 약을 받아 마셨다. 떨림이나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그다음 새끼손톱만 한 초콜릿 조각을 입에 머금었다. 차분히 심호흡하던 조순복 씨는 남편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던 두 사람은 슬프고 행복했다. 마침내 고통에서 벗어난 조순복 씨는 스위스의 한적한 언덕 위에 뿌려졌다.
책의 후반부는 일기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과 엄마가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가 동시에 드는 감정, 주변 사람들의 엇갈린 반응, ‘산 사람을 위한 의식’. 1년 뒤 스위스에 다시 찾아간 이야기도 있었다. 이 책은 딸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남편의 목소리는 별로 없었는데, 언덕 위에서 ‘여보, 마누라, 순이, 조순복’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아내를 부르며 우는 남편의 슬픔을 전하는 구절에서는 가슴이 미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딸은 같은 슬픔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엄마의 뜻을 기렸다.
조순복 씨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지옥 같은 고통을 끝낼 방법이 없었기에 스위스를 택했다. 그리고 때가 정해졌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자각하고 의미 있게 채울 수 있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의 이별이 저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일들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았고, 지금 여기서 진짜 중요한 일들을 챙겼다.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슬펐지만, 엄마의 고통이 끝났기에 안도했고 그 길이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독자인 나도 책을 읽으며 마냥 슬픔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다.
책을 다 읽고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다가 눈에 띄는 댓글들을 발견했다. 난치병 환자인데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워 하루하루가 미치겠다는 댓글, 말기암 환자인데 매일 밤 내일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댓글. 감히 내가 짐작도 못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그분들께도 무엇이든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