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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Apr 30. 2020

미국의 보물찾기 '이스터 에그 헌트'

#조용하지만 화려하게 #격리 속 부활을 보내는 방법


국의 부활절은 꽤나 성대하다.


종교 여부와 관계없이 오래전부터 각종 이벤트로 이 시기를 채워두고 기다린다. 하필 이때가 아이들의 봄방학과 겹치기에 미리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해리포터를 다 읽은 아이들과 런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서 버터 비어를 마시고 있을 예정이다, 올랜도에 디즈니 월드를 방문하기 위해 일정을 예약해 두었다, 뉴욕에서 일주일 호캉스를 즐길 예정이다, 가족들과 내셔널 파크에 가서 캠핑을 즐기려고 장비를 다 구비해 두었다.' 등등 듣기만 해도 설레는 계획이 다양하다. 이 시기의 부활절 특수를 노려 몇 주 전부터 마트는 알록달록 현란한 토끼와 달걀 모양의 초콜릿과 굿즈들로 도배되고 있었다. 옆 집 대문에 커다랗게 걸린 리스도 봄이 왔음을 드디어 부활이 왔음을 화려하게 알렸다.


모두에게 낯선 생애 가장 조용한 부활


하지만 올해 4월 1일 만우절을 보내며 어떤 만우절 거짓말보다 거짓말 같은 현실을 겪었다. 뉴스가 다 거짓말이라 믿고 싶었다. 정말 조용한 부활이었다. 생애 이렇게 조용히고 텅 빈 부활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여행은 물론 이미 모든 항공 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 아니 비행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집에서 한 발자국 나갈 수 없는 부활이었다. 텅 빈 뉴욕 맨해튼, 광활한 이탈리아 두오모를 채우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성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같은 시간 이 곳, 황량한 DC의 거리에도 하릴없이 벚꽃만 휘날릴 뿐이었다. 모두에게 낯선 풍경, 익숙하지만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는 부활절이라니.

 

1. 이스터 에그 헌트

 아이들이 부활절에 가장 기다리는 이벤트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보물 찾기인 '이스터 에그 헌트'이다. 말 그대로 달걀을 바닥에서 찾아 달걀 바구니에 담는 게임이다. 아이들은 귀여운 부활 토끼가 달걀을 곳곳에 숨겨 놓는다고 믿는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 숨겨진 달걀을 찾는 것이다. 봄 햇살을 머금고 너른 잔디를 뛰어다니며 달걀을 한 아름 품에 안은 아이들이 얼마나 싱그럽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넓은 공원이나 놀이터 잔디밭 곳곳에 달걀을 숨기는 수고로움은 아이들의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보상받는다. 실제 달걀로 하는 경우보다는 달걀 모양의 플라스틱 색 공으로 놀이를 한다.

 이 곳 역시 법으로 격리를 강제하고 필수 기관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과 공공시설은 폐쇄한 상황. 모든 공원이 산책로를 제외하고 모두 닫혀 있어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우리는 아쉬운 대로 집에서 에그 헌트 게임을 했다. 대신 진짜 삶은 달걀을 가지고 달걀 꾸미기를 했다. 그림을 그리고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였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아껴먹는 뽀로로 캔디와 아기 상어 밴드를 함께 담아 정성스레 포장을 하였다. 이에 더해 부활 분위기 물씬 나는 가랜드와 문 앞에 걸 리스까지 만들었다면 금상첨화! 아이들이 손수 만들어 아무래도 만들어 파는 것보다는 어설프지만 과정이 재미있고 무척 의미 있었다.


2. 부활절 뮤지컬과 연극 감상

 이 시기에 우울과 불안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계 공연들이 무료로 열리고 있다. 양질의 뮤지컬, 연극, 오페라가 넘쳐난다. 평소엔 고가의 금액을 지불하고 특정 시기에 특정 장소에 가지 않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르의 문화계 공연들이 유튜브를 타고 활짝 열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베를린 필 하모닉', '뉴욕 필 하모닉' 공연이 한 달간 무료로 열렸다. 또 '태양의 서커스' 역시도 집 안에 편히 앉아서 맥주를 들이키며 반쯤 누워 볼 수 있다. 특히 부활절 주간 동안에는 Sight & Sound Theatres 'Jesus'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고 'The Pilgrim's progress'라는 종교성 짙은 애니메이션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직접 가서 볼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문화 쪽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손쉽게 공연을 즐길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부활절 분위기 물씬 나는 두 공연 덕분에 아이들에게 부활절을 설명하기도 좋았고, 나도 새롭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3. 홈 베이킹한 부활절 음식 들고 집콕 여행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기분만이라도 실컷 내보기 위해 이것저것 요리를 해본다. '확 찐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갇혀서 먹지도 못하면 무슨 낙으로 있으랴. 면역력을 높인다는 좋은 핑계 삼아 부활절 음식을 만들어 본다. 미국에서는 주로 부활절을 '봄'이 왔다는 신호로 여긴다. 봄이 왔다. 온 사방에 눈치도 없이 꽃이 만발한 4월.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연일 외치는 오늘은 엘리엇이 노래하였듯 가장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미국 사람들은 꿀을 글레이즈드 한 햄을 굽고, 봄 향기 가득 담긴 샐러드를 사이드로 하겠지. 오늘은 바질 향 가득한 파스타와 미트볼도 괜찮겠지만 왠지 한식이 건강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다 옛날 사람인 탓일까.

 우리는 한식에 맞춰 부활절 요리를 해본다. 탱탱한 아롱사태를 잡내 없이 푹 삶은 수육을 낸다. 갓 버무린 달래 무침과 봄동 겉절이까지 올리면 완벽하다. 우습지만 이 곳 사람들은 달래나 쑥을 먹지 않아 지천에 그런 것들이 자라난다. 잘 보면 명이 나물도 깔렸다. 우리 친정 엄마 보면 몇 시간 쪼그리고 앉아 캐고 계실 테지. 아무튼 이 나라 사람들이 안 먹는 우리에겐 귀한 천연 면역력 보조제를 캐다 아기들에게 먹인다. 멀리 가지 못하니 한국서 들고 온 은박 돗자리를 덱이라고 불리는 베란다에 내다 깔고 앉아 저녁 상을 차린다. 같은 음식도 왠지 하늘 아래 먹으니 더 나들이 온 기분이다. 아마존에서 주문 한 케이크 팝 메이커를 꺼낸다. 팬케이크 믹스 가운데 달콤한 팥 앙금을 넣어 홈베이킹 호두과자를 후식으로 낸다. 굽는 족족 없어진다.


조용하지만 화려하게, 격리 속에서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부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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