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웨이 티켓
#투 더 천조국 #안녕 한국 #새로운 시작
오전 10시 비행기였다.
수 없이 비행기를 탔었는데, 이번엔 기분이 달랐다. 편도 티켓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는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아이 둘을 데리고 비행기에 제시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쌓아 놓은 짐만 자그마치 열두 개였다. 결혼식 전 날도 숙면을 취했던 속 편한 나인데, 짐 정리를 다 해두고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아이들은 이제 갓 두 돌 반 그리고 돌도 안 된 아기였다. 직항으로 14시간이라니 생애 첫 긴 비행이 될 터였다. 짐을 여러 차례 풀었다 싸며 수차례 확인을 했지만 무언가 잊은 것이 있는 것만 같아 계속 짐을 뒤적였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옷을 갈아입는다. 분유병이며 기저귀, 아기 과자와 물통 그리고 물티슈까지 온갖 아이들과 나의 흔적들을 모두 백팩에 욱여넣고 조용히 아이 둘을 흔들어 깨운다. 새벽 4시 반 한참 숙면을 취해야 할 시간에 눈을 뜬 아이들은 비몽사몽, 작은 눈을 더 작게 뜨고 어리둥절해한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아빠를 만나러 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수개월 전부터 말해줬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 동트기 전 한강의 야경을 보며 인천으로 향했다. 올림픽대로에 차는 많지 않았다. 사촌 오빠가 일부러 이 시간에 깨어 전화를 했다. "조심히 가고, 잘 지내. 오빠가 얼른 한 번 갈게." 한다. "응 오빠. 가족들 잘 부탁해." 하다 말고 목이 메고 만다. 길게 숨을 들이쉬고 하려 했던 말을 삼킨다. 전화를 끊었다. 그것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통화였던 것 같다. 품에 안긴 아이들은 다시 잠이 들었다. 차 창밖 풍경이 빠르게 스친다. 모든 것이 동화 같았던 아릿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지나, 한강공원에서 친구들과 드러누워 이게 인생이라며 치맥을 하던 스물셋의 철없던 내가 보인다. 첫 취업 면접을 마치고 걸었던 샛노란 은행잎이 뒹굴던 시월의 목동과 배고픈 예술가 인양 구석구석 쏘다니던 서촌의 미술관도 스쳐 간다. 온갖 바를 전전하던 이태원 거리도,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랑이 아프고 돈벌이가 서러워 울고 토악질 해대던 구로역은 가슴에 묻는다. 정겹지도 않은데 지겹게 걷다 정들어 버린 테헤란로도 스친다. 그리고 시골 할머니 댁. 떠나기 전 그 거칠고 작은 손으로 말없이 내 두 손을 꼭 잡으셨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어주시던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동시에 지난날의 불평들이 바짓가랑이를 잡아끈다. 집 앞 이면도로는 차와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와 사람들이 다 섞여 걸었다. 아이를 데리고 걸을만한 곳이라고는 대형 쇼핑 몰 뿐이었다. 워킹맘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죄인이었고, 독하다는 이야기 들으며 버텨낼 자신이 없어 '경단녀'가 되었다. 어린이집은 사고가 많았고, 믿고 맡길래도 대기가 길었다. 아이들 먹거리와 놀잇감으로 장난치는 기업들이 많다. 미성년자 성범죄는 왜 아직도 많으며,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뿐인 걸까. 학연 지연 혈연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다. 조직 문화는 말로만 개선 중이다. 소확행과 워라벨을 외치지만 그 속에 남아 있는 나의 권리는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시댁 행사는 왜 이리 많으며, 시어른들은 잘해주셔도 왜 이렇게 불편할까. 집 값은 왜 둘이 벌어 모아도 전세조차 얻을 수 없게 높은 건지. 사교육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하는가. 그러면서 자꾸 아이는 낳으라는데 낳을 환경이 돼야 낳지. 도로는 오늘도 매연과 미세먼지와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태어나 일 년도 안된 아이에게 꾸역꾸역 마스크를 씌우며 이거 안 쓰면 놀러 못 나간다고 윽박지르는 내가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데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상념 속에 희뿌옇게 밝아 오는 차 창 밖을 바라보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배웅을 위해 모인 친정, 시댁 식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애틋한 인사가 길어지니 딸이 "이제 아빠 보러 가요!" 한다. 그 귀여운 재촉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나는 떠난다. 그 모든 불만들을 뒤로하고 마스크 다 집어던지고 떠난다. 그렇게 '탈조선이 답'이라 농담처럼 외치며 직장 생활의 고됨을, 육아 고충을 함께 나누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든다. 집 밖은 온통 푸르른 자연 속이라 원 없이 뛸 수 있는 곳으로 간다. 내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지역에 사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곳으로 간다. 그 모든 문제들을 그대로 두고 나는 떠난다. 홀가분하게 날아오를 것 같은데 잘 웃어지지가 않는다. 왜 뭔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자꾸 뒤를 돌아볼까. 태어나 평생 살아온 곳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조국을 저버리는 것일까. 우리 부모님, 형제들 그리고 태어나 맺은 모든 관계와 추억, 나를 형성한 경험, 나의 뿌리.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진한 씁쓸함과 아쉬움이 그리고 동시에 투명한 개운함이 소용돌이쳤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비행기는 지연도 없이 가볍게 떠 올랐다. 작아지는 공항, 거리, 집, 빌딩, 멀어져 가는 도시 그리고 지난 삶. 안녕 나의 한국, 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