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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May 02. 2020

10년 후 미국에서 김장할 팔자

#자발적 전업주부로 #살아 남기 #새로운 타이틀

엄마는 평생 전업 주부셨다. 그 시절 어머니들이 흔히 그렇듯 결혼과 동시에 일을 포기하셨다. 나도 졸업 후 입사하여 대충 10여 년을 일했다. 그리고 임신과 동시에 그 흔한 '경단녀'가 되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도 하며 아이도 키우는 '워킹맘'의 멋짐은 내가 해낼 수 있는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은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정신없이 밥하고 기저귀 갈고 하다 보니 어느새 애 둘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남편을 따라 머나먼 타국에 와서 보니 더욱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만다.


1. 미국의 데이 케어 vs. 한국 어린이집


한국엔 어린이집이 있어 정부 지원을 받으면 무료로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다. 교실 내 cctv 설치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알림장 어플'을 통해 아이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볼 수 있었다. 혹시 어린이집 내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뉴스라도 있을 것 같으면 맘 카페에서 빛의 속도로 전달되었다. 쉽지 않은 엄마들이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믿고 보냈다. 한 학기에 한 번 상담은 필수였다. 운 좋게도 담임 선생님들은 눈물 나게 친절하셨다. 그런데 이 곳의 데이케어라는 것은 숨이 턱 막히게 비쌌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사설 기관에 풀타임으로 아이들을 맡겼을 때 한 아이당 교육비를 월 250만 원은 생각해야 했다. 기저귀를 떼지 않은 아이는 교육비를 더 내야 했다. 형편에 맞추어 조금 교육비가 저렴한 가정 어린이집에 가보았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자유 놀이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보고 계시는 정도였다. 식사와 간식으로 나오는 것이 와플, 소시지 빵, 도넛, 파스타, 머핀 그리고 음료수들이었다. 아직 우리 아이는 가능하면 설탕이나 소금, 튀긴 음식은 적게 주고 싶은데 그런 요구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물론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가진 센터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비싼 중에 더 비쌌고 대기 인원도 길었다. 그러니 내가 외국인 노동자로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은 아이 둘 데어 케어 비용의 절반도 되지 않을 듯싶었다. '경단녀 외국인 아줌마' 신분이 되고 보니 집 밖으로 나가 내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자의 반 타의 반 애 둘을 데리고 있게 되었다.



2. 나의 발언권과 경제권을 모두 그대에게 맡기노라.


이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가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다. 미국에 오면 영어가 늘 줄 알았는데 요리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주재원인 신랑을 따라왔거나, 외국인과 결혼하며 이민을 오신 경우가 많다 보니 언어와 경제적인 면에서 신랑에게 의존도가 높아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 정원 가꾸기, 손바느질로 인형 만들기, 십자수, 유화 그리기 등 다양한 금손 취미로 카페는 장식되어 갔다. 그것이 적성에 맞다면 얼마나 현모양처스러울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정적인 취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고민되었다. 얼른 최저 시급 파트타임 일을 하더라도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거나 아니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을 찾거나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이 곳 사회에서도 멋지게 활약 중인 커리어 우먼들도 계신다. 당연히 아이들을 다 사교육 기관에 맡기고도 남을 정도로 풍족히 월급을 맡는 고소득층 전문직을 가진 분들도 계신다. 그런데 나는 외국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외국 국적의 이방인으로서 여행과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제부터 그대를 나의 비서로 임명 하노라.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집 밖에서는 귀한 나를 대변하여 할 말을 하도록! 흠흠."



3. '엄마 기사' 라이딩의 일상


이곳은 땅이 넓다. 단점은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곳에서 저곳으로, '엄마 기사'로 차량 운행을 해줘야만 한다. 애가 셋인 사촌 언니는 아침에 애들 깨워 밥 먹이고 도시락 들려 학교 데려다주고 각기 다른 스케줄에 맞춰 방과 후 활동을 시키고 데려와 또 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했다. 하필 애들 나이 차가 좀 있어서 초, 중, 고로 나눠지고 말았다. 미국은 누가 편하게 공부한다고 했는지... 특히 이곳은 학군 좋기로 유명한 미국의 대치동, 장난 없다. 그런데 이 코비드 19 사태가 터지고 '격리 시대'가 길어지니 그 기사로 살던 일상마저 그리워진단다. 하긴 이제 애들을 어디든 좀 데려다주고 싶긴 하다.


4. 남이 해주는 밥이 먹고 싶은데


 세 끼 가족들 밥과 간식 해 먹이느라 하루 종일 말 그대로 손에 물 마를 시간이 없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 간절하다. 그런데 배달이 한국처럼 신속 다양하지 않다. 음식의 종류는 제한적이고 별로 맛이 없다. 외식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한국식 치킨이라는 'CM 치킨'이 교민들 사이에 인기라고 해서 먹어봤다. 한 마리 25불, 낮게 잡아도 29000원 정도. 그런데 몹시 실망스럽다. 나가서 먹느니 내가 해 먹고 말지. 먹고 싶은 것이 생기는대로 해 먹다 보니 아주 국적 불문 가리지 않고 다 시도해보고 있다. 만들어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입맛에 맞춰 조리하니 당연히 놀랍도록 맛있다. 이 한 몸 부서지게 삼시 세 끼를 해대야 다. 당연히 사 먹는 음식인 줄 알았던 피자, 치킨, 카스텔라, 보쌈, 샤부샤부, 삼겹살, 인도식 커리, 얼그레이 스콘, 까르보나라, 닭볶음탕, 냉면, 짜장면, 탕수육까지 모든 것이 다 집에서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이런 걸 집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 먹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요리 실력이 늘어서 기쁜데 왜 눈물이 날까.

20대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웃으며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영어 공부 열심히 하더니  10년 후 이역만리 타국에서 김장하고 있을 팔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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