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위에 영어?
#언어 사대주의 #영어에 미친 나라 #미국 OEM 교포 신랑 #이중언어
사람들은 교포인 남편이 아이들에게 영어 책을 읽어 주고, 육아를 적극적으로 하면 '역시 미제'라 했다. 한국말을 하다 실수를 하면 귀엽다고 웃었다. 교포는 미제가 아니다. 굳이 물건에 비교하자면, 한국 브랜드 미국 OEM 방식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주변 아이 엄마들은 '넌 애들 영어 걱정은 안 해도 돼서 좋겠다.'라며 이중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될 우리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중요 과목' 중 하나로 접하게 된다. 우리 때만 해도 초등학교 3학년 즈음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영어 전혀 안 시키는 유치원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외국어 노출 시기는 낮아졌다. 뇌의 시냅스가 닫히기 전에 이중언어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하나의 언어를 충분히 인지하기 전에 두 가지 이상의 언어의 학습을 강요할 경우 언어 거부나 장애가 올 수 있다는 의견이 늘 팽팽하다. 나는 유아 교육을 전공했고, 영어 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영어 유치원을 거쳐 가장 비싼 교육비로 늘 '특권 교육, 귀족 학교'로 타깃이 되는 국제학교에 열정을 바쳐 일했다. 운 좋게도 케이블 tv의 영어 프로그램의 진행도 맡아하고, 일간지의 인터뷰도 해왔다. 그렇게 한국 조기 영어 교육의 최전선에서 10여 년간 아주 치열하게 일했다. 영어는 교과목으로서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취업, 승진, 평가에 큰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하고도, 평생 따라다니는 골치 아픈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정부는 영어로 전 과목을 수업하는 정책을 무리해서 도입시키기도 하고, 영어 공용화를 논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영어에 미친 나라다. 국제화를 위해 영어는 필수라지만 그 가르치는 방식을 보노라면 아직도 숨이 막힌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영어권 국가는 어릴 때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만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면 모두가 외치는 '글로벌 리더'가 저절로 되는 것 마냥 멋져 보인다. 반기문 전 UN 총장님, 강경화 외교부 장관님의 연설이나 인터뷰는 중요한 영어 교육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초중고를 나오고도 농담까지 완벽하게 통역해 내어 주목받은 영화 기생충의 통역가 '샤론 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근의 큰 이슈였다. 영어를 배우는 것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다. 국제화 시대, 영어는 당연히 해야 하고 재밌게 할 수 있으면 더 좋다. 하지만 영어를 어느 한 나라의 다른 언어로서 접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해야만 하는 과목으로 압박스럽게 접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또 언어에 대한 사대주의가 함께 전달되는 것은 불편하다.
영어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 할 때였다. 한국 나이 5-7세의 유아 교육을 영어로 하는 사교육 기관이었다. 십여 년 전이었지만 셔틀버스, 원복비, 방과 후 수업 비용, 급식비를 제외하고 한 달 교육비만 240만 원이 넘었다. 제2 외국어 시간에 한국어 또는 중국어를 가르쳤고, 이외의 모든 과목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는 것이지만 원비는 첫 월급보다도 높았고, 내가 내 아이를 낳아도 보낼 수 없는 곳이었다. 유명한 연예인 자제분부터 의료계, 법조계 등 전문직 종사자들 뿐 아니라 조부모님들이 원비를 결제해주시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무튼 내로라하는 집안의 귀한 자제분들이 모여서 조기 영어 교육을 받는 곳이었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것은 좋은데, 그 수업 방식 자체가 언어 사대주의를 심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교육 기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English zone'이었고, 모든 언어는 영어로만 사용해야 했다. 한국말이 편한 아이들이니 놀다가 당연히 한국말이 갑자기 튀어나오곤 했는데, 그러면 벌점을 받았다. 그리고 교사가 듣지 못할 때는 친구들끼리 서로 선생님께 이르곤 했다. 교사는 모든 순간 영어를 쓰도록 교정해야 했다. 나는 심한 반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이것이 일제 시대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제2 외국어'인 한국어 수업 시간, 한국어가 유일하게 허용되는 그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봇물 터지듯 재잘재잘 한국말을 한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한국어 시간, "어린이 여러분, 한국말이 중요할까요? 영어가 중요할까요?"라는 질문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영어요!"라고 대답했다. 씁쓸했다. 심지어 같은 교사이지만 노란 머리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를 눈에 보이게 차별 대우하는 학부모님들도 계셨는데 그 자녀들이 배우게 될 태도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한국말을 잘하는 것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지만, 영어를 잘하는 것은 몹시 자랑스럽게 여긴다. 같은 말로 영어를 틀리면 너무 부끄러워하지만, 한국말을 틀리게 쓰는 것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어떤 부류의 한국 엄마들은 영어로만 아이들과 대화한다. 아파트에서 백화점에서 종종 접하는 그 기이한 풍경에 소름이 끼쳤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실제로 영어가 편한 경우보다는 영어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아이들을 한국어와 영어에 똑같이 노출시키고 싶은 열혈 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모국어가 부족한 것은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까.
영어는 중요하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영어는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전문적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영어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접할 수 있는 문화와 기회가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언어가 어느 언어 위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결코 모국어보다 중요한 언어는 없다. 교육 기관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영어도 더 빨리 배운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할 테니 이 점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다. 그저 아이들마다 '언어 민감성'이 달라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그저 조기 영어 교육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꼈을 뿐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한국말로 대화한다. 당연히 신랑도 집 안에서 영어 사용은 금지다. 어느 순간 영어를 해야 할 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한국어 책과 영어 책을 함께 두고 읽어 달라는 책을 읽어주긴 한다. 하지만 어떤 언어도 모국어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는 내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설사 이곳이 미국일지라도 아이들을 '미제'로 키우고 싶진 않다. 우리 엄마 아빠와도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아이들의 20대를 상상해본다. 엄마가 작가인데 엄마 책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들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우리 신랑도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내가 쓴 글은 정성스럽게 완독 한다.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해 한국말을 더듬는 한국인은 멋있는 것도, 귀여운 것도 아니다. 그건 부끄러운 것이다.